전국 지자체 동물복지 고심, 조례 개정·시범사업 운영
현수막 하나 못 거는 세종과 대조적… 정책제안 ‘꾸준’

주인 없이 길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고양이. ‘길고양이’의 국어사전 뜻풀이다. 고양이는 도시의 대표 야생동물이다. 누군가에겐 사람과 공존하는 이웃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존재만으로도 불편한 동물이기도 하다.

세종시 동지역 내 아파트 단지 일부에서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 문제가 주민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울음소리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민원을 넣는가 하면, 먹이를 주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

아파트 거주 비율 95%. 도시의 주민들이 길고양이와의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야 한다면, 어떤 공존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까. 최근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난 사례와 갈등 해소 방안 등에 대해 차례대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① '길고양이' 두고 세종시 주민갈등 증폭

② ‘고양이가 무슨 죄’ 세종시 캣헬퍼의 호소

③ 길거리 동물과의 ‘공존’ 외면하는 세종시 <끝>.

올해부터 경기도청사 등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모습. (사진=경기도)
올해부터 경기도청사 등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사진=경기도)

전국 다수 지자체가 ‘길고양이와의 공존’을 시작한 가운데, 동물 보호 현수막 하나 내걸지 못하는 세종시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민 간 갈등 해소와 동물 복지 실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다수 지자체에서 길거리 동물 보호와 관련된 새로운 대안을 내놓고 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거나 공동체 간 갈등으로 번지는 사태를 겪고 난 후 일어난 변화다.

경기도와 제주시는 올해부터 청사 등 일부 장소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다. 경기도의 경우, 국민제안제도를 통해 제시된 아이디어를 정책화했다.

서울과 전북, 강원, 광주, 충남, 대구 등에서는 이미 길고양이 급식소를 지정·운영하고 있다. TNR(포획-중성화수술-방사) 사업과 연계해 길거리 동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 대상지 내 길고양이의 보호·이주,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지난해 온라인 정책 제안 공론장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했다.

조례에 따라 건설사가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재개발지역 아파트 공사 현장에 마련한 길고양이 이동 통로. (사진=부산동물학대지방연합 페이스북)
조례에 따라 건설사가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재개발지역 아파트 공사 현장에 마련한 길고양이 이동 통로. (사진=부산동물학대지방연합 페이스북)

지자체 조례를 통해 구체적인 동물 보호 사안을 명문화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올해 5월 11일 부산시의회는 재개발지역 공사 전 길고양이 이주·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부산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과 경기도는 이미 정비구역 내 길고양이 보호조치를 조례에 명문화해 시행 중이다.

반려동물 보호 조례, 동물보호 조례 등을 개정해 조문에 포함한 사례도 있다. 

경기도는 ‘경기도 동물보호 조례’에 5년마다 도 단위의 동물복지계획을 수립해 시행토록 했다. 

지난해 ‘동물보호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전주시는 동물복지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전담팀을 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주민갈등조정협의체도 구성해 운영 중이다.

세종시도 동물보호 조례가 제정돼있으나 동물보호센터 지정이나 유기동물 구조·반환 등에 대한 사항을 규정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아름동 캣헬퍼 A 씨는 “세종에서도 수 년 째 길고양이 보호에 관한 정책 제안이 있었지만 제대로 논의된 적은 없다”며 “아직 어떤 정책 방향도 나온 것이 없고, 현수막 하나 제대로 걸지 못하는 세종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고 말했다.

1년 전, 아름고 학생들의 정책 제안

지난해 10월 열린 2019세종학생참여대회 모습. (사진=세종교육청)
지난해 10월 열린 2019세종학생참여대회 모습. (사진=세종교육청)

길고양이와의 공존을 위한 정책은 꾸준히 제안돼왔다. 공론의 장이나 시 홈페이지 정책 제안 코너를 통해서다.

지난해 10월 아름고 학생 6인의 제안도 한 차례 주목받았다. ‘길고양이와 공존하는 세종시’를 주제로 작성한 보고서는 ‘2019년 세종학생참여발표대회’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보고서에서 “주로 버려진 유기묘들이 계속 번식하며 길고양이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한 민원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사회 갈등 해결 차원에서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체 수 관리를 위한 TNR 사업 확대 ▲유기동물 입양센터 설치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고양이 반려동물 등록제 강화 ▲세종시 유기동물 보호의 날 지정 ▲동물권 보호 교육 프로그램 운영 ▲길고양이 인식 개선과 보호 필요성 홍보 등을 제안했다.

학생들은 “길고양이 급식소를 통해 안정적인 먹이 주기가 가능하고, TNR 사업과 연계해 개체 수 관리 효과도 거둘 수 있다”며 “서울시 길고양이의 날 행사처럼 유기동물의 날을 지정하면, 인식 개선과 홍보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날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해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 홈페이지 정책 제안 코너에 올라온 글.
시 홈페이지 정책 제안 코너에 올라온 글. 매년 길고양이 관련 정책이 제안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길고양이 문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일이고,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먹이를 주지 말라는 공고문을 붙이고 살처분하는 방법 보다는 유기묘 입양을 장려하고, 보호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등 동물권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농업축산과 관계자는 “TNR 사업은 수요를 고려해 내년에는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현재 시에서 나서 갈등을 조율하기는 어렵다. 급식소 등 추가적인 제안 사업에 대해서는 현재 검토하고 있거나 예정된 사안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유기동물 입양비 지원사업 ▲민간 동물병원 위탁 유기동물보호센터 지정·운영 ▲반려동물 축제 개최 등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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