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급식소, 오락가락 철거된 현수막
"사람·동물 함께 살기 좋은 도시 고민할 때"

주인 없이 길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고양이. ‘길고양이’의 국어사전 뜻풀이다. 고양이는 도시의 대표 야생동물이다. 누군가에겐 사람과 공존하는 이웃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존재만으로도 불편한 동물이기도 하다.

세종시 동지역 내 아파트 단지 일부에서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 문제가 주민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울음소리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민원을 넣는가 하면, 먹이를 주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

아파트 거주 비율 95%. 도시의 주민들이 길고양이와의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야 한다면, 어떤 공존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까. 최근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난 사례와 갈등 해소 방안 등에 대해 차례대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세종시 아름동 한 공원 근처에 마련된 길고양이 급식소가 엉망이 돼있다.
세종시 동지역 한 공원 인근에 마련된 길고양이 급식소가 엉망이 돼있다.

'길고양이'를 둘러싼 세종시 아파트 주민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불편한 사회적 시선을 감수하며 캣헬퍼(cat helper) 역할을 자처해 온 주민들이 공개적으로 '동물복지'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한 것. 

개별적으로 활동했던 캣헬퍼(cat helper)들의 커뮤니티 모임이 최근 개설되는 등 변화도 생겼다. 길고양이보호협회나 동물복지센터 등 관련 단체가 없는 세종시에 이들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창구가 생길지 주목된다.

지난 3년 간 아름동에서 길고양이를 돌봐온 한 모 씨는 “올해 7월 다시 급식소가 망가지는 일이 발생했다”며 “엄연히 동물복지법이 있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가 불법이 아니라는 인식도 부족하다. 지자체 차원의 정책 시행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일부 민원에 의해 계속 제한당하고 있다. 이것이 특별자치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 씨는 올해 3월 시 지원 사업 등을 통해 길고양이 10마리에 대한 중성화 수술을 마쳤다. 부족한 부분은 개인 사비로 충당했다. 

그는 “TNR을 마친 고양이는 발정이 오지 않기 때문에 울지 않고, 영역 다툼도 하지 않는다”며 “고양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무작정 모두 포획해달라는 요구가 있는 것으로 안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도시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고, 도시민들은 이제 이들과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폭넓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시청에서 설치 후 설거한 동물보호 관련 현수막.
세종시청에서 설치 후 철거한 동물보호 관련 현수막.

시는 최근 길고양이 급식소 인근에 동물보호 현수막을 설치해놓고 곧 다시 철거하는 우스꽝스러운 행정을 폈다. 불법 현수막이라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유에서다.

한 씨는 “타 지자체처럼 급식소 운영이나 지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며 “현수막이나 인식 개선 홍보·안내에 대한 요청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갈등을 키우고 있다. 밥을 주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점만 안내해줘도 바랄 것이 없다. 동물보호에 관해서는 방치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며칠 전에는 단지 내에서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간 사례도 발생했다. 길고양이를 쓰다듬는 주민의 모습을 무단으로 촬영하고, 험악한 언행도 오갔다. 

한 씨는 “밥을 주는 행위뿐만 아니라 가까이하는 행동에도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이 분노는 곧 밥을 주는 캣맘들에게 향하고 있다”며 “불편한 눈길 때문에 새벽, 밤 시간대 으슥한 급식소를 오간다. 밥을 줘서 고양이가 몰리는 것이 아니다. 습성 상 원래 그들이 있는 곳일뿐”이라고 설명했다.

척박한 신도시, 관심은 ‘먼 일’

세종시 한 아파트 단지 인근 길고양이 모습.
세종시 한 아파트 단지 인근 길고양이 모습.

TNR 사업 예산은 지난해 대비 올해 더 줄었다. 총 3315만 원(223마리), 국비 매칭사업이다. 수요가 많아 신청은 이미 8월에 마감됐다.

유기묘 발생이 많은 재개발·재건축 지역만큼이나 캣헬퍼들이 전국에서 가장 열악한 곳으로 꼽는 곳이 바로 세종시다.

한 씨는 “주민들은 신도시기 때문에 길고양이가 있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며 “아파트 거주 문화에 크린넷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도 없고, 주택가도 적다. 척박한 환경에 그나마 뒷산이 있는 동네에 모이는데, 이마저도 도시 특성 상 거주 지역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에 따르면, 동물보호나 복지 관련 전담 부서를 따로 두지 않고 있다. 아직은 행·재정적 여건이 충분치 않기 때문. 유기동물이나 동물복지 관련 직영 센터도 전무해 관련 사업도 미미한 수준이다.

한 씨는 “커뮤니티센터 등 여러 대형 건물을 지어야하고, 시민 복지도 신경써야 하니 동물보호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예산이 아니라 정책 방향과 고민에 대한 문제라고 본다. 단지 내 작은 도서관에 동물복지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구성하거나 주민 인식 개선을 위한 팜플렛 제작, 현수막 홍보 등의 방법도 첫 걸음으론 충분하다”고 밝혔다.

끝으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여성이 행복한 도시 슬로건과 함께 동물이 살기 좋은 도시 차원의 고민도 제안했다.

한 씨는 “신도시 특성상 주민들은 깨끗한 환경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며 “하지만 반려동물이건 야생동물이건 이 도시에서 함께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아이들이 자라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동물에 대한 연대의식이 있고, 동물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 이웃이 없는 좋은 사회의 여건을 갖췄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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