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원도심 기획] 건축 전공자가 꾸민 책방
마을호텔 개념 청사진, 영감 주는 동네서점

공주 원도심에 작은 서점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조용한 동네에 일어난 작은 변화다.

판매하는 책보다 주인의 소장 서적이 더 많은 책방과 지역 작가들의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쉼이 있는 책방, 외관이 독특한 천변 서점과 토종 곡물 음료를 내놓는 한옥 북카페까지. 걸어서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외지에서 온 청년 책방지기들이 모여들었다.

책이라는 매개로, 우리는 어떤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공주의 작은 책방들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충남 공주시 제민천1길 55 블루프린트북 외관 모습.
충남 공주시 제민천1길 55 블루프린트북 외관 모습.

건축을 전공한 외지 청년 여럿이 공주에 모여들었다. 건물을 짓는 일을 넘어 공간의 ‘쓰임’을 만드는 일에 매료된 까닭이다.

공주 원도심 제민천변, 외관이 독특한 동네책방이 있다. 건물 1층은 노천카페로 운영 중이다. 언뜻 보면, 여느 외국 여행지에서나 볼 법한 감각적인 풍경이다. 

철제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면 아담한 서점이 있다. 다락같은 좌식 공간 위로 둥그런 천장을 올려다보면, 아늑한 책의 이글루 속에 파묻힌 것 같은 상상이 든다. 여기에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LP 음악까지 더해지면 감성은 배가 된다. 

서점 이름은 ‘Blueprint Book’. Blueprint, 한국어로는 청사진으로 번역된다. 설계도 등을 복사하는 데 쓰이는 기법 또는 도면 자체를 일컫는다. 은유적으로는 ‘어떤 자세한 계획’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주 블루프린트북 책방지기 목진태 씨.
공주 블루프린트북 책방지기 목진태 씨.

책방지기 목진태 씨는 건축을 전공한 건축학도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건축 설계, 시공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간의 쓰임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날의 반복이었어요. 늘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이 있었는데, 공간을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의 쓰임까지 기획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 선후배 몇 명이 모였고, 공주에 사시는 지인분이 좋은 공간을 제안해주셔서 이곳을 임대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책방을 오픈했어요. 사실 책과는 먼 전공이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동경이 있다고나 할까요.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에 책을 무더기로 사는 일이 제 소박한 소비였거든요(웃음). 책방 건물 외관이 특이하다고 하시는데, 제민천변 교회 옆 동그란 건물이라고 하면 이제 다 알아들으시더라고요.”

소도시 동네책방이지만, 비치된 책들을 훑어보면, 출판업계 주류 이슈를 빠르게 포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대사회 청년층 문제나 예술가, 여성 등을 소재로 한 서적도 눈길을 끈다. 책방 출입구 옆 ‘월간 베스트셀러’도 독서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지표다.

“신간도 많고, 예술서적, 사회적 이슈를 담은 책들도 많은 편입니다. 공주에 대형서점이 없어요. 시대에 맞고, 트렌드에 맞는 신간 정도는 소개해 줄 수 있는 책방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지방 소도시에서도 서울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게요.”

책방 건물 1층에 오픈한 노천카페 '프론트' 전경.
책방 건물 1층에 오픈한 노천카페 '프론트' 전경. 이들이 꿈꾸는 마을호텔의 로비 개념이다. 

책방지기는 신간 소개와 책 큐레이션 업무도 맡고 있다. 책 큐레이션과 연계한 상품기획도 그의 몫이다. SNS를 통해 선보인 ‘월간청사진’은 꽤 호응을 얻기도 했다.

“책을 소개하려면 많이 읽어야 해요. 서점을 운영하면서 한 쪽에 책상을 두고 신간 소개글도 쓰고, 콘텐츠 기획도 하고 있어요. 책을 판매하는 일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우니까요. 월간청사진이라는 책 패키지박스를 기획해 판매중이에요. 추천 책과 공주 로컬 제품을 엮어 구성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주에 사는 재밌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책방을 시작으로 더 큰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수평적 개념의 마을호텔이다. 여행 트렌드가 체류형 숙박, 체험으로 변화하면서 소도시 여행이 늘어나고 있는 변화와도 연결된다. 책방지기를 포함해 대학 선후배 사이인 청년 5명이 함께 기획 중이다.

“보통 호텔은 하나의 수직적 건물을 떠올리잖아요. 그걸 마을단위로 흩어놓은, 수평적 개념입니다. 지금 1층 카페 이름이 ‘프론트’인 것도 그 이유예요. 시작이자 호텔의 로비, 환대의 개념이에요. 책방 건물 옆에는 옛 수선집이 있는데, 이 공간도 현재 임대해 리모델링 중입니다. 앞으로 여러 공간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로컬매거진’ 출판, 직업으로서의 책방지기

블루프린트북 서점 내부 모습. 책을 읽을 수 있는 다락 공간과 높은 천장이 특징이다.
블루프린트북 서점 내부 모습. 책을 읽을 수 있는 다락 공간과 높은 천장이 특징이다.

책방을 운영하며 만난 지역민들은 또 다른 영감이 됐다. 토종벼를 재배하는 농사꾼이나 수공예 작가, 지역의 모습을 기록하는 그림 작가들이 그의 눈에 포착된 것. 전남 광양시 광양읍 로컬매거진을 제작해 본 경험으로 공주 로컬매거진 출판도 준비 중이다.

“로컬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고 있어요. 지역 사람들을 전국에 소개하는 거죠. 가을호를 준비하고 있는데, 농경콘텐츠가 중심이 될 것 같아요. 

공주는 공간이 주는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도시예요. 옆 수선집을 예로 들면, 1937년에 지어진 한옥인데, 외관은 전혀 한옥처럼 안보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이 계속 증축을 했기 때문이에요. 한 채의 집에 전통과 현대 건축 양식이 다 들어있죠. 공주에서 도시재생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공간적인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사는 삶. 서점 오픈 11개월 차 책방지기는 냉혹한 현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서 출판시장도 비대면으로 바뀌는 추세기 때문. 더군다나 올해는 장마가 길어지면서 노천카페 운영이 어려워 이중고를 겪었다.

“연고가 없는 작은 도시에서 살기로 선택하면서 걱정도 많았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산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겠구나 생각했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또 몰랐고요(웃음).

카페에서는 직접 베이킹을 하면서 디저트 배송 판매를 시작했고, 서점도 주문·판매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인근 대학생들이 주 고객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코로나 상황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여행객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요. 물론 장마가 길어지면서 손님들 보기가 어려웠지만요.”

책방지기 목진태 씨.
책방지기 목진태 씨.

책방지기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도 체감하고 있다. 인생의 방향을 정 반대로 바꾼, 젊은 책방지기로서의 고민이다. 

“직접 무언가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성장한다는 기분이 들어요. 동시에 번듯한 회사원이 아니라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회적인 시선을 느끼고 있기도 하고요. 가끔은 책방지기라는 직업에 더해 문화기획자라는 점을 첨언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서울에서 즐겼던 콘텐츠들을 작은 도시에 도입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좋아요. 공연이나 전시, 영화제도 기획하고 있는데, 서점이 도시에 활기와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도 기능했으면 합니다. 주민들에게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행객들에겐 이곳에 머물 수 있는 하나의 유인책이 됐으면 합니다.”

제민천변 인근에 잇따라 작은 서점이 생긴 변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각기 다른 서점의 매력이 도시의 또 다른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작은 도시에 여러 책방이 생기면서 새로운 가능성도 생기는 거죠. ‘책의 도시’요. 실제 주민 중에 북클럽 활성화 도시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어요. 시 차원에서도 동네 서점 활성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요.

모든 책방은 책방지기의 라이프 스타일이 녹아있어요. 책방지기들이 꾸린 다양한 공간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책방들은 예민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렇지만, 책방을 통해 새롭게, 모험하듯이 책의 세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만나길, 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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