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 합시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지 마세요.』
『마스크!! 깜빡하셨나요? 나와 이웃을 위해 「꼭」 착용해 주세요.』
『코로나!!! 엘리베이터에서도 감염될 수 있다고 하지요. 제발 마스크를 꼭 쓰고 타 주세요. 제발요. 너무 불안해요』
『혹시 마스크를 쓰지 않고 타셨나요? 승강기 안에서도 전염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스크를 꼭 제대로 착용하고 타주세요. 코는 내놓고 입만 가리면 쓰지 않은 것과 같다지요. 임산부, 어린 아이 걱정이 큽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어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글이다. 그림과 함께 쓴 글이 있고, 눈에 띄기 쉽도록 색상과 글자 크기를 달리한 글도 있다. 앞에 둘은 떼어 냈고, 뒤 세 개는 아직 붙어 있다. 관리소에서 붙인 것이 있고 입주민이 붙인 것도 있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임신부가 읽고 나서 “맞아요. 걱정 이예요. 꼭 안 쓰는 사람이 두 사람 있어요. 뭐라고 말할 수도 없고…, 참 속상해요”라고 한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막무가내일 수가 있는가? 급기야 엘리베이터 안에 마스크를 걸어 놓았다. 새것이니. 깜빡하고 쓰지 않은 사람은 떼어 쓰라는 배려가 담겨있지만, 우선은 눈에 띄기 쉽게 하여 마음을 좀 움직이게 하려는 뜻이 더 크다.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어린아이들도 ‘코로나’, ‘마스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외식하자, 놀러가자, 캠핑가자’는 말이 일상이 되었다. 외손녀가 서울 할머니 댁에 다녀 온지가 반년이 넘었다. 사위네 가족은 어버이날에도 가지 않았고, 어른 생신날에도 선물을 보내드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예 다녀 갈 생각을 말라고 하니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추석 때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돌보아 준다는 구실로 자주 만나는 우리가 미안하기만 하다. 어린 아이가 유치원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얼굴은 불긋불긋해지고 끈에 눌린 자욱이 남는다. 보기에 안쓰럽다. 가족들만 있는 차안에서는 좀 벗으라고 해도 ‘안 돼요’라며 벗으려 하지 않는다.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인류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손을 자주 씻으라는 말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린다. 모임도 줄줄이 취소하고 미뤄지고 있다.

이러다 연말 송년회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식을 해본지도 오래됐다. 만나야 할 일도 웬만해서는 전화나 문자로 갈음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회활동이 위축되고 경제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는 더욱 딱해진다.

마스크 사려고 줄서던 때 잊지 말자

하루 빨리 극복하고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대책 못지않게 개인의 의식과 실천이 중요한데 무슨 이유인지 어기고 비뚤어 나가는 사람이 꼭 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질서를 지키며 더불어 사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까닭을 모르겠다. 민감한 시기에 독불장군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쓰라는 당부는 자신은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마스크를 쓰고 타라는 운전자에게 욕설을 하고, 지하철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의 심리상태는 과연 어떠한지,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제재하는 장치는 없을까를 생각한다.

코로나 발생 초기, 마스크 몇 장을 구하려고 요일에 따라 긴 줄을 서야했다. 판매하기 전 이른 시간부터 약국 문 앞에서 30분, 한 시간 쯤 줄서는 것은 약과였다. 이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워 쓰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쓰고 버린 마스크가 비에 젖고 바람에 날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언제쯤 성숙한 시민의식을 볼 수 있기를 염원한다.

선진국의 세련되고 성숙된 시민이라는 거창한 바람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공중생활에서 최소한의 에티켓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모두 배웠다>라는 책이 유행된 적이 있었다.

그렇다. 몰지각한 사람들은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배워야 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가? 비록 말은 하지 않지만 따가운 눈총을 느끼지 못하는가? 제발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되었으면 한다. 아니면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든지 말이다. 마스크가 걸리지 않는 엘리베이터, ‘마스크 쓰라’는 문구가 들어간 안내문 아니 호소문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때가 언제나 올지, 고대한다.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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