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IN충청-⑮] 충남 공주시 유구읍 전통시장, 1996년 영화 ’꽃잎’ 촬영지
주민 삶 발자취 그려낸 유구 벽화거리도 볼거리

대전·세종·충남 지역 곳곳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촬영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 명대사와 인상깊은 장면들을 회상하며 지역 관광 명소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방문객들의 오감만족은 물론 추억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촬영지 명소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충남 공주시 유구읍 벽화거리.

누군가에게는 잊힌, 아니 잘 알려지지 않은 섬유의 마을, 유구. 한때 큰 호황을 누렸던 섬유의 고장이지만, 타지인에게는 아직 생소한 동네다. 

수십 개의 직물공장이 자리한 충남 공주시 유구읍은 주민 약 750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카드(jacquard·자카드 직기를 사용해 복잡한 문양을 표현한 직물)를 생산하던 대표 섬유도시였다. 

한국전쟁 당시 평안북도와 황해도 출신 직물 제조업 종사자들이 집단으로 피난 오면서 섬유업과 인조견 생산이 시작됐고, 전국에서 모여든 3000여 명의 여성 직공들과 함께 1970년대에는 전국 인조견의 70%를 생산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던 곳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섬유산업으로 전성기를 누렸고, 이와 함께 유구시장에도 인조를 거래하는 상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의 값싼 제품이 시장을 휩쓸고, 여기에 IMF 외환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주민 삶과 함께한 직조 산업은 슬슬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충남 공주시 유구전통시장 해성상회. 

유구 마을의 중심 광장이던 유구전통시장에는 40여 년간 자리를 지킨 '해성상회' 등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인근 거리는 1996년 4월 5일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비극의 1980년 5월, 계엄군의 총탄에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녀의 슬픔과 한을 담은 영화 <꽃잎>. 최윤 작가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가 원작이며, 당시 신인배우였던 이정현이 주연을 맡고 문성근과 설경구, 허준호 등이 출연했다.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김추자의 꽃잎을 잘 부르던 한 소녀(이정현). 악몽 같은 5월의 광주에서 모친을 잃은 충격으로 미쳐버린 떠돌이 소녀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공사장 인부 장(문성근)을 만난다. 장은 소녀를 학대하지만, 차츰 그녀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고 보살피게 된다.  

<꽃잎>은 개봉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5월의 광주를 추모할 때 이따금 대중의 기억 속에 스치는 영화로 남아있다. 당시 작품성을 인정받고 이정현은 34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 문성근은 17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 <꽃잎>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충남 공주시 유구전통시장.
충남 공주시 유구전통시장 거리에 '영화촬영지' 팻말이 표시돼 있다. 

영화 <꽃잎>이 다녀간 시장 한 쪽에 '영화촬영지'를 알리는 팻말이 여전히 붙어있지만, 10여 년이 지난 탓에 옛 감성은 다소 바랜듯하다. 하지만 시장 인근 벽화 거리는 유구의 섬유 역사를 수 놓듯 아름답게 채워져 있다. 

문화예술 거리조성 사업으로 완성된 이 벽화거리는 수직기부터 북직기, 무 북직기, 현대직조기 시대가 그림으로 펼쳐져 있다. 충남도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비 10억 원으로 조성된 이곳은 임재일 사회문화예술연구소장(공주대 미술학과 객원교수)이 40여 명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조성했다. 이들은 섬유를 주제로 유구읍 곳곳에 대형벽화 등 공공미술작품 29점을 제작하고, 유구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충남 공주시 유구벽화거리.

국내 대표 섬유산업 단지로 명성을 얻었지만, 자동화 기계 도입 등으로 쇠퇴해진 유구. 하지만 주민들은 '비단 위에 수를 놓은 듯 모든 것이 꽉 차고 만족스럽다'는 뜻의 금수만당(錦繡滿堂)을 마음속에 새기며 다시 피어날 유구의 꽃잎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7년 11월에는 섬유도시 유구를 재조명하는 섬유역사전시관이 개관해 수직기, 달랭이감기, 작태기, 해사기, 자카드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섬유 제작 방식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엔드리스서머 등 19종의 수국이 만발한 유구 색동 수국정원도 볼거리다. 지역 주민들의 땀방울로 조성된 이곳은 수국이 만개하는 6~7월 외에도 해바라기 등 다양한 식물을 심어 방문객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선물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곡사를 가기 전 유구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비단 위에 수놓듯 아름답게 그려진 벽화거리를 거닐고, 시장 거리를 한 바퀴 돌다 보면 마음 한쪽에 자리한 옛 감성을 떠올릴 수도 있다. 

충남 공주시 유구벽화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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