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역사는 미래의 자산

대전 소제동 옛 철도관사 51호, 현 두충나무집. 이곳 말고도 3채의 철도관사에 대한 문화재 등록 신청이 이뤄졌다.
대전 소제동 옛 철도관사 51호, 현 두충나무집. 이곳 말고도 3채의 철도관사에 대한 문화재 등록 신청이 이뤄졌다.

지난 1989년 「뿌리 깊은 나무」가 기획한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사람’ 충청남도 편에 소개한 대전시는 반세기 동안 인구가 서른곱으로 늘어나 해마다 7.07%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고 찬탄했다. 

이 같은 인구증가율은 서울과 부산이 그 반세기동안 매년 6.52%와 6.58%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낸 것에 견주어 본다면 대전의 인구증가율은 이 나라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그 보기를 찾기 힘든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대전이 급속하게 인구가 늘어난 요인은 철도와 고속도로라는 교통의 통과지점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 이를 “철도에서 도시 발전의 끈기를 얻고 고속도로에서 도시 발전의 승리를 기록한” 도시가 대전이라고 평했다. 

철도와 함께 시작된 근대도시 대전

30여 년 전의 대전에 대한 평가와 지금의 대전은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대전은 경부선 철도가 일으킨, ‘철도가 낳은 도시’라는 점이다. 오늘날 대전의 번영은 철도로 시작됐고, 철도로 인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일본인들이 도시기반시설과 충남도청을 끌어들여 도시 발전 모티브를 만들면서 대도시의 기틀이 되었다는 점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남아 있다.

지금은 코로나로 세계인의 지구촌 일주가 멈칫한 상태지만,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지구촌을 떠돌 때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는 단연 ‘역사와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도시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는 프랑스 ‘파리’였는데 그 이유는 그 도시에 프랑스의 역사가 녹아있고, 문화예술과 유행의 멋진 패션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단 ‘파리’뿐 아니라, 관광객들로 들끓는 유럽의 여러 도시는 한결 같이 오랜 역사와 문화적 기품이 살아 있는 도시들이다. 

유럽 뿐 아니라, 중국, 아프리카, 남미 등 전 세계의 유명관광지는 다 역사 도시요 문화 도시임을 우리는 ‘세계 테마기행’과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프로에서 보아왔다. 또 우리 시대의 건축가 승효상은 그가 쓴 책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에서 “처음 간 도시에서 관광명소보다는 그곳 사람들이 사는 일상의 공간을 찾는다”며 “별로 볼 건축이 없더라도 삶이 눅진히 녹아있는 거주지의 골목길 풍경에서 늘 큰 감동을 받는다”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필자가 살아온 대전은 도시로서의 역사가 100년이 넘는 비교적 짧은 연륜을 지녔지만, 다른 도시가 넘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태생이 1904년 경부선 철도와 함께 했다는 것과 도시의 건설 자체가 철저히 일제의 식민통치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근대문화유산은 서울에도, 부산에도, 군산에도 또 전국 도처에 있지만, 대전처럼 식민도시로 건설된 도시는 드물어서 학계는 대전을 “대표적인 일제의 식민도시”라고 평했다. 대전의 근대성이 중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자는 일제의 잔재라며 근대문화유산을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런데 건물이 사라진다고 해서 지나간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대만과 중국 본토에 일제가 세운 숱한 건물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고, 또 베트남에서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건물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 건물을 보면서 오히려 지나간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후세세대의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다. 또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경제적 이득도 취하고 있었다.

근대문화유산 보러 강경·목포 찾는 젊은이들

철저한 근대도시 대전은 일제가 세운 여러 근대유산이 많은 도시였으나, 지금은 하나씩 사라지고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은, 역사를 지워가는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근대문화유산을 보러 군산과 강경, 목포 등 다른 도시로 갈 때 대전은 근대문화유산 관리에 무심했다. 그러던 와중에 몇 년 전 소제동의 철도관사 일대에 카페거리가 들어서자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명소가 되면서 대전의 근대성이 새삼 눈길을 끌게 되었다. 대전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뻔했던 공간이 카페촌으로 부활되면서 ‘철도가 낳은 도시’ 대전의 역사성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낡은 역사가 젊은이의 감성과 결합하면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대전의 철도관사촌 일대는 재개발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오랜 역사의 흔적은 도로와 함께 사라졌고, 또 지금 인기 있는 관사촌 일대의 카페거리 역시 철거 위기 앞에 놓여 있다. 100년 대전의 역사현장이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지는 순간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대전의 몇 안 되는 근대역사의 공간 철도관사촌이 이대로 사라진다면 대전은 근대도시로서의 역사성을 상실하는 우를 되풀이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역사가 지워질 현실 앞에 뜻있는 시민들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 

지난 세월 대전의 역사적 장소성이 멸실되는 광경을 수없이 목격해 온 시민들로서는 이번 사태 역시 그렇게 지켜보아야 하는가 하는 무력감에 젖게 된다. 역사가 사라진 도시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볼 수 있고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역사의 장소가 단지 지나간 세월의 흔적만이 아니라,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새기는 지혜가 절실한 작금의 대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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