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권원(權原) 없는 권리’ 주장이 근본 문제

대전시청 기자실. 자료사진.
대전시청 기자실. 자료사진.

지난 6월 대전교육청 기자실 좌석확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전의 기자들, 권원(權原) 없는 권리를 내려놓자’는 칼럼을 썼다. 고발이 아닌 고백의 글이었고,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로부터 2개월여, 이번엔 대전시청 기자실 이전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이 불거졌다. 대전시가 현 시청사 9층에 있는 지방기자실과 중앙기자실, 브리핑룸 등을 통합한 뒤 2층 공간으로 이전시키겠다는 계획에 대해 출입기자들의 찬반이 뜨겁다. 

대전시는 출입기자 2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방역을 이유로 기자실을 전격 폐쇄한 이 시점이 기자실 이전의 적기라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기자실 이전에 대한 명분을 ‘코로나19에 대한 청사방호’측면에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 같은 대전시 설명은 솔직한 자세는 아니다.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기자실을 통합 이전하겠다는 구상이 존재했다. 다만 불 보듯 빤한 일부 기자들의 반발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를 고심하다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웃 충남도가 청사 5층에 있던 기자실을 1층으로 이전하면서 개방형으로 전환한 사례, 세종시 출입기자단이 폐쇄성을 버리고 일정한 조건을 갖춘 매체에게 문호를 개방한 사례 등이 대전시에겐 동기부여가 됐다. ‘대전시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는 비판도 계속되던 상황이었다. 

사실 재선도전을 앞둔 허태정 시장이 이 시기에 일부 언론의 반발이 예상되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 것에 대해서는 ‘과거와 다른 용기’라고 평가한다. 해 오던 방식대로 현상을 유지하고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 편이 적어도 허 시장의 정치행보에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취재 보이콧’이라는 반발을 샀던 충남도 사례만 보더라도, 손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허 시장은 이왕 '시스템을 개혁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사실 기자실이라는 칸막이를 그대로 유지한 채 9층에서 2층으로 이전하고, 시설을 쾌적하게 리모델링하는 수준의 개혁이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괜한 세금 낭비일 뿐이다. 

기자는 공공시설에 개인용 책상을 두고, 개인적인 편의를 제공받을 ‘권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공무원에게 ‘00씨 커피 한잔만’이라고 말하거나 ‘00씨 이것 복사 좀 부탁해’라고 요구할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취재지원과 홍보라는 명분으로 당연하게 받아왔던 ‘권원 없는 권한’에 대한 구태개선이 먼저다. 

다음이 칸막이 해체다. 단순히 공간적 의미의 칸막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기자와 지방기자, 신문기자와 인터넷기자, 각종 협회 소속 기자 등 온갖 종류의 칸막이들을 언론 스스로 만들고 저마다 이익단체처럼 행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언론 스스로의 신뢰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칸막이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자실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가장 큰 명분 역시 ‘최소한의 검증과 자정수단 확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타당한 주장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올드미디어는 적폐, 뉴미디어는 개혁’이라는 일부의 고정관념이 취재현장과 얼마나 동 떨어진 생각인지에 대해서 100%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막이’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이제까지 기자단 또는 기자실이라는 ‘칸막이’가 정말 언론자정의 수단으로 사용됐는지, 아니면 신생언론에 대한 배척 수단이었는지 이야기할 사례는 부지기수다. 기자단과 기자실 소속이었던 특정 기자가 신생언론사로 자리를 옮겼다고 해서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언론자정과는 무관한 일이다. 

대한민국 언론지형은 지난 20년 큰 변화를 겪었지만, 대전시청 기자실과 기자단은 옛 모습 그대로다. ‘칸막이’는 자정의 수단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본질은 공간문제가 아니다. 물리적 칸막이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 칸막이를 털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권리는 권원(權原)으로부터 출발한다. 권원은 어떠한 행위를 법률적으로 정당화하는 근거다. 행정관청이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특정 공간을 브리핑룸으로 꾸며 언론을 만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언론 스스로 특정 공간을 전유물처럼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권원 없는 권리 주장에 불과할 따름이다.”
<대전의 기자들 ‘권원 없는 권리’ 내려놓자 / 2020년 6월 10일 디트뉴스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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