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30대 가장이라는 조은산 씨가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시무7조 상소문’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회수가 하루만에 20만을 돌파하더니 곧 30만을 넘겼다. 이런 파괴력을 직감했던 때문인지 청와대는 처음엔 이 글을 검색 대상에서 제외했다. 글을 숨긴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나치게 저급한 표현들이 있어서..”라고 둘러대며 “문 대통령 탄핵 청원이나 추미애 법무부장관 해임 청원 등 이보다 더한 비판 글도 모두 그대로 실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해명은 납득이 어렵다. (청와대 맘에 들지 않는 내용은 많아 보이나) ‘지나치게 저급한 표현’은 보이지 않으며, 이 글이 대통령 탄핵보다 강도가 낮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 이 글이 정말 저급하고 권력 비판의 강도가 탄핵보다 낮았다면 조회수가 단숨에 30만을 넘고 언론마다 특필하는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 씨의 글은 2020년판 벽서가 되어 곳곳에 나붙고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시무7조 상소문이 가져온 현상은 ‘글의 힘’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문자의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저자는 다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 난방이 되는 집에 살아본 적이 없고 가난해서 공사판을 전전한 젊은이였다. 공부를 제대로 했을 리 없고 경력도 학력도 내세울 게 없는 듯하다. 그 글의 주인공에는 애초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았다. 그 힘은 오직 ‘문자’에서 나온 것이다. 무명의 민초가 올린 글 하나가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칼보다 강한 펜, 그 펜은 아직도 문자(?)

일개 백성이 펜 하나로 권력의 폐부를 찌르자 권력이 움찔하고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냥두면 시퍼렇게 날이 서 있을 수도 있는 칼(검찰)은 법무부장관의 인사권 하나로도 제압할 수 있으나 펜은 그게 어렵다. 저자에게 펜을 빼앗기 전에는 어려운 일이다. 신문 방송 유투브 등 펜을 자처하는 곳이 전국에 넘쳐나지만 펜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은 많지 않다. 

‘펜’은 사실을 근거로 한 주장과 소견의 기록물이지만 모든 주장이 다 펜이 될 수는 없다. 근거가 있으면서도 이치가 맞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읽는 맛을 주어야 비로소 강한 펜이 된다. 조 씨의 글이 그런 글이다. 많은 독자들은 무릎을 치면서 탄성을 자아내지만 당사자들은 부끄러워하거나 노여워한다. 분노를 일르키는 게 목적은 아니다. 권력이 잘못을 고쳐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이 펜의 역할 중 하나다.

바야흐로 글보다는 ‘말(言)의 시대’다. 유튜브가 각광받으면서 말이 아닌 문자로 언론 역할을 해온 신문조차 방송을 소유해야 힘을 쓰는 시대다. 일부 신문들은 인터넷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소식을 전하며 주장을 펼친다. 많은 개인 유튜브 방송들 기성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소재로 이용자들은 유혹한다.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 시장도 이젠 텍스트가 주요 수단인 네이버보다 말이 수단인 유튜브로 넘어가고 있다.

말과 방송의 홍수 시대에 이번 시무7조 상소문은 ‘문자의 힘’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문자와 말은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똑같은 내용을 말로 할 때와 글로 보여줄 때 전달되는 힘이 크게 다른 경우도 많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할 때 그 펜은 말보다 펜을 뜻한다. 시무7조 상소문도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그가 똑같은 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올렸다면 이번처럼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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