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원도심 기획] 위로와 쉼이 있는 느리게책방
독립출판서적 특화, 작은 관광안내소 역할까지

공주 원도심에 작은 서점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조용한 동네에 일어난 작은 변화다.

판매하는 책보다 주인의 소장 서적이 더 많은 책방과 지역 작가들의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쉼이 있는 책방, 외관이 독특한 천변 서점과 토종 곡물 음료를 내놓는 한옥 북카페까지. 걸어서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외지에서 온 청년 책방지기들이 모여들었다.

책이라는 매개로, 우리는 어떤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공주의 작은 책방들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충남 공주 우체국길 24 느리게책방. 사진은 책방지기 김지혜 씨.
충남 공주 우체국길 24 느리게책방. 사진은 책방지기 김지혜 씨.

공주 원도심 골목가에 숨어있는 작은 서점. 제민천 반죽교를 건너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느리게책방에 다다른다.

창가에 놓인 직사각형 탁자 위에는 여러 종의 독립출판서적이 놓여있다. 대형 서점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을 집어드는 것과는 다른 정서다. 누군가에게 읽혀지길 기다리는 듯한 책 표지에는 손글씨 메모가 붙어있다.

이곳 책방지기 김지혜(35) 씨는 지난해 8월 느리게책방을 오픈했다. 경북 성주 출신이지만, 공주는 그가 대학생활을 한 곳이다. 공주대를 졸업한 뒤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수 년 만에 이곳으로 돌아왔다.

여행자로 방문한 공주에서 그는 과거의 기억과는 다른,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소담한 매력에 끌려 여기서 책방지기가 됐다.

우연히 얻은 용기

느리게책방에 입고된 독립출판서적. 표지에 책방지기 혹은 작가가 직접 쓴 책 소개글이 붙어있다.
느리게책방에 입고된 독립출판서적. 표지에 책방지기 혹은 작가가 직접 쓴 책 소개글이 붙어있다.

그는 직장생활을 그만 둔 뒤 전업 책방지기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 대학에선 지리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지만 곧 삶의 만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대전에서 사회복지직 공무원으로 일했어요. 그 직업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나름 제 전공 분야에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이었으니까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힘들어 휴직도 해 봤지만 결국 그만두게 됐어요. 안 되겠더라고요.”

이후 그는 녹색연합 환경 활동이나 마을여행 기획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만난 대전 동구의 한 작은 책방에서 그는 위로받았고, 동시에 새로운 꿈을 꾸는 강력한 용기도 얻었다. 

“우연히 대전 동구 대동마을을 가게 됐어요. 운명적이게도 그 골목에서 구름책방이라는 공간을 만났죠. 책방 사장님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어요. 고향은 아니었지만, 동네 아이들과 오랜 시간 정서적 교류도 하고, 놀이도 해오면서 교감하셨다고 해요. 그 일을 꾸준히 하려면 수입이 있어야하니 협동조합을 만들어 책방도 열고, 카페도 열게 된거죠. 

그때 그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하셨어요. 동네 아이들에게 변호사라든지 의사라든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대단한 직업이 아니더라도 좋은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저도 복지를 공부했기 때문에 이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초반 책방에 발걸음을 한 건, 평안과 쉼을 얻기 위한 사적인 이유에서였다. 좋은 책과 따뜻한 차로 그는 책방에서 위안을 얻었다. 마음이 잔잔해지니 곧 다른 생각도 들었다. ‘이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번씩 책방을 찾아갔어요. 전면 유리로 밖을 보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는데, 그때 본 평화로운 바깥풍경이 제겐 큰 위로가 됐어요. 제가 이곳을 통해 일상을 회복했듯이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책방 전면은 이때의 경험을 반영해 햇살이 밝게 들어오는 통유리 인테리어로 설계했다. 작지만 책방지기와 손님 공간을 파티션으로 구분했다. 손님이 편하게 책을 고르고 볼 수 있도록 한 배려다.

인연, 작은 관광안내소

책방지기 김지혜 씨. 여행객들이 많아지고 있는 공주 원도심에 작은 관광안내소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책방지기 김지혜 씨. 여행객들이 많아지고 있는 공주 원도심에 작은 관광안내소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느리게책방은 다양한 독립출판서적을 주로 취급한다. 독립출판서적이 80종, 일반서적 300종이다. 지역 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작품도 굿즈 형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인근 공방에서 제작한 상품이나 지역 작가들의 일러스트 엽서, 손수건은 기념품 역할도 톡톡히 한다.

독서모임은 월 1회 열린다. 모임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학생부터 자영업자, 직장인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인다.

“개성 있는 독립출판서적을 만나실 수 있어요. 지역 작가들의 시집도 있고요. 앞으로는 독서모임을 통해 느리게책방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쉼과 관련된 주제의 책을 본격적으로 다뤄볼까 해요. 책장 두 칸에는 기부받은 헌책들이 있는데, 이 책을 판매해 모인 금액은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합니다. 10월에는 처음으로 북토크를 엽니다.”

책방 오픈 1년. 책방지기는 이 공간을 통해 다양한 인연을 만났다. 단골손님이 된 독립출판 작가와는 콜라보 기획도 하고 있다. 앞으로는 여행객이 늘고 있는 공주에 작은 관광안내소 역할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독립출판서적 ‘제주껏 살래요’ 이리나 작가님은 가까운 세종에 살고 계시더라고요. 책방을 통해 만났는데, 10월 북토크 첫 작가님으로 모시게 됐어요. 학교 졸업 후 고향으로 가게 된 손님 한 분이 남긴 편지도 기억에 남아요. 이곳이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며, 오래 오래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였어요.

의외로 여행객들이 많아요. 공주 원도심을 홍보할 수 있는 책자도 일부러 마련해뒀고요. 앞으로는 원도심을 알릴 수 있는 작은 관광안내소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책방 유리창 전면에 쓴 글귀처럼 느리게책방이 부디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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