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원도심 기획] 작은 서점이 모이는 이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삶으로서의 책방

공주 원도심에 작은 서점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조용한 동네에 일어난 작은 변화다. 판매하는 책보다 주인의 소장 서적이 더 많은 책방과 지역 작가들의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쉼이 있는 책방, 외관이 독특한 천변 서점과 토종 곡물 음료를 내놓는 한옥 북카페까지. 걸어서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외지에서 온 청년 책방지기들이 모여들었다.

책이라는 매개로, 우리는 어떤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공주의 작은 책방들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충남 공주시 당간지주길 10 가가책방 전경.
충남 공주시 당간지주길 '가가책방' 전경.

골목길 낡은 철제문 앞 ‘가가冊방’이라는 상호가 보인다. 어디선가 주워왔을 법한 동그란 식탁이 이곳 간판이다. 글자를 읽으려면 허리를 숙이고 가까이 다가가야 할 정도다.

책으로 둘러싸인 내부에는 둥근 탁자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와이파이도 안 잡히고, 라디오도 103.5MHz 주파수만 들리는 곳.

책방지기 서동민(38) 씨 고향은 충남 서산이다. 공주에 살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일했다. 매달 책을 추천해 보내주는 스타트업 기업이 그의 직장이었다. 이곳에서 꼬박 3년을 근무했고, 업(業)으로서의 책을 내려놓았다.

그는 퇴사 이후 한 한옥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인연이 돼 공주로 여행을 오면서 이곳에 책방을 열기로 결심했다.

책방지기 서동민 씨.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공주에 정착했다.
책방지기 서동민 씨.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공주에 정착했다.

“적당히 작고, 적당히 저렴한 곳을 찾다보니 이곳에 책방을 차리게 됐어요. 부서진 의자 등받이를 다리로 만든 책상이나 문 닫은 중국집에서 가져온 가구들, 헐린 집에서 버린 물건들을 가져와 인테리어 자재로 썼어요. 버려질 뻔한 물건들을 재조립해 가구로 만들었으니, 재활용이 아니라 '업사이클링'이라고 해야 하나요? 오픈한 지는 1년 2개월 정도 됐습니다.”

책방지기는 공대생 출신이다.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책을 좋아해 책을 추천해주는 일을 업으로 삼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책을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책을 발견하는 계기만 만들어줘도 충분하다는 생각에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하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게 되죠. 책방은 사실 공간에 불과합니다. 이용자를 연결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 한 겁니다. 책 판매 수입은 공간 유지 비용만 되면 충분합니다. 이익을 얻으려는 순간, 처음 마음이나 의도가 달라질 수 있잖아요. 경제적인 활동은 문화, 예술, 도시재생과 관련된 일로 하고 있어요."

이곳은 책 판매를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어주거나, 같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북클럽 독서 모임도 열리고 있다. 실제 가가책방에서 파는 책은 100여 권뿐이고, 나머지는 주인의 소장책이다.

“단순히 책이라는 물질과 이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이어지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책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공허하고 허황된 것으로 밖에 느껴질 수 없거든요. 가끔 제 책을 팔라는 손님이 계신데, 꼭 정가를 주고 판매합니다.

책을 짐이나 숙제로 남기는 경우가 많잖아요. 막상 사고 봤더니 제목만 좋고 다시 안 읽게 되는 책들도 마찬가지고. 물론 출판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많이 사는 것도 좋은 일이죠. 오픈한 지 반년 정도 됐을 때 겨울에 제가 좋아하는 카페 반죽동247 사장님과 콜라보 해서 만든 책 표지에요. 어때요? 북커버를 새로 만든 건데, 딱 한 권 남았어요.”

공주 한 카페와 콜라보 해 선보인 북커버. 스케치는 직접 했다.
단골이 된 공주 반죽동247 카페와 콜라보로 선보인 북커버. 스케치는 책방지기가 직접 했다.

가가책방의 슬로건은 ‘오랜 새로움’이다. 버려진 것을 새로 쓰고, 오래된 이야기를 새로운 사람들과 나누는 것. 여러모로 고전의 영속성을 느끼는 일이 여기선 가능하다.

“고전을 반복해 읽으면서 재발견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가책방이 고전을 소재로 삼는 이유는 우리들의 핍진한 삶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시대도 멀고, 배경도, 역사도 모두 다르죠. 전쟁이나 가난, 여성문제도 우리 현실이라면 냉정해지기 힘든데, 시대라는 한 필터를 거치고 나면 현실에서 조금 숨이 트여요. 현실이었다면 분노로 끝났을 일도 고전을 통해 보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는 서울을 떠난 공주에서 삶이 꽤나 만족스럽다고 했다. 책방지기로서 삶이 그에게는 남다른 행복이다. 이곳에서 그는 좋은 사람들도 여럿 만났다.

“공주에서 사는 것이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답답할 수 있지만, 제게는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서울 오가는 것도 어려움이 없고, 기본 생활비나 주거비도 서울에 비해 훨씬 저렴하거든요. 덜 벌더라도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누구가가 어떤 공간을 만나기 위해 공주를 찾고, 온 김에 원도심의 골목길도 걷게 되고요. 요즘은 머무는 여행을 많이 하잖아요.”

책방 안쪽에서 바라본 내부 모습. 대부분이 책방지기의 소장 책이고 일부 판매하는 책도 있다.
책방 안쪽에서 바라본 내부 모습. 대부분이 책방지기의 소장 책이고 일부 판매하는 책도 있다.

이 지역은 원도심 살리기 도시재생 사업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제민천 인근에는 새로운 가게들도 여러군데 들어섰다. 최근에는 부동산 지가 상승이라는 변화도 나타났다.

“'재생'이라는 활동 대부분이 부수고 새로 짓거나 외관을 바꾸는 데 그치고 마는데, 무엇보다 사라져선 안 될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다른 지역과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될까봐 걱정도 되고요. 유동인구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원도심 땅값이 오르고 있어요. 앞으로 원도심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간을 매입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뜻 보면 책방인지도 모를 골목길 서점. 책방지기는 이곳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랄까.

“어느날 한 손님이 다녀가시면서 '소설 속에 나오는 책방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얼마 전엔 학생들이 졸업 작품 영화를 찍으러 오기도 했었고요. 무인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누구나 의식하지 않고 책을 보고, 글을 쓸 수 있어요. 주인은 문만 열어주고 가는 거죠. 가가책방은 가가호호에서 ‘가가’를 따 온 거예요. 어디에나 있을 법한, 내 집처럼 편안한 공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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