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IN충청-⑬] 천년고찰 공주 마곡사
당신은 환생한 연인을 알아볼 수 있나요?

충남 공주 마곡사.
충남 공주 마곡사.

한 여름의 공주 마곡사. 지루한 장마가 잠시 쉬어가는 틈에 산사를 찾았다. 초입 식당가를 지나 임도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신록 가득한 천년사찰 마곡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으로 통한다.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세계에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영산전과 매화당, 명부전이 위치한 곳은 마곡사의 남원이라 부른다. 태화천이 흐르는 극락교 다리를 건너면 대웅보전, 대광보전, 오층석탑이 위치한 북원에 다다른다.

대광보전 앞 마곡사 오층석탑은 보물 제799호로 지정돼있다. 겉으로 보면 길쭉한 형태의 평범한 모습이지만, 탑 꼭대기에는 풍마동(風磨銅)이라는 청동 조형물이 얹혀있다. 건립 시기는 탑이 풍기는 라마교 양식 등을 고려할 때, 원나라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백범 선생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일본군 중위를 살해한 뒤 감옥에 수감됐다. 이후 1898년 탈옥해 잠시 마곡사에 은거했다.

대웅보전 옆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백범 선생이 삭발한 삭발터가 있고, 은신했던 백련암도 근처에 위치한다. 백범 선생은 해방 후 이곳을 찾아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잠시 은거하던 곳이기도 하다. 마곡사 백범당 모습.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잠시 은거하던 곳이기도 하다. 마곡사 백범당 모습. 친필 휘호와 사진 등이 걸려있다.

천년고찰의 풍경에 취해 걸음을 옮기며 윤회(輪回)에 대해 생각해본다.

환생이라는 소재로 사회적 통념을 깨부수고, 모든 멜로영화가 담아내고자 했던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 영화의 제목은 그 자체로 죽음과 환생에 대한 복선을 깔고 있다. 

1983년 여름. 국문학을 전공하는 82학번 대학생 인우(이병헌)는 동갑내기 태희(이은주)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비오는 날 자신의 우산 속으로 들어온 여자. 이름조차 알 수 없었던 짧은 만남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둘의 사랑은 무르익어간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이미 초반부에 전달된다. 죽음과 환생, 그리고 인연. 두 사람이 산 정상에 올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곧 영화의 제목과 연결된다.

“인우야, 나 뉴질랜드 가고 싶어. 거기 가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대.”

“뛰어내릴려고?”

“어, 뛰어내려도 끝이 아닐 것 같아.”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등산 후 식사를 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 마곡사 한 식당에서 촬영됐다. (사진=네이버영화)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등산 후 음식을 기다리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 마곡사 한 식당에서 촬영됐다. (사진=네이버영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 장면 이후 이어지는 신은 공주 마곡사에서 촬영됐다. 등산을 마친 두 사람이 한 식당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는 장면이다. 계곡 옆 나무 평상에 두 사람이 앉아있고, 평상 기둥엔 ‘도토리묵’ 메뉴 푯말이 걸려있다. 태희 등 뒤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이때,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던 조소과 학생 태희가 국문학도인 인우에게 난감한 질문을 던진다.

“아, 인우 너 국문과지? 나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젓가락은 시옷 받침이잖아, 근데 숟가락은 왜 디귿 받침이야? 어차피 두 개가 발음도 똑같은데 숟가락도 시옷 받침 해도 되잖아?”

가을 낙엽이 하늘하늘 떨어진다. 주인공들 목소리에 산새 소리가 덧입혀진다. 인우는 당황해 횡설수설하고, 멋쩍게 웃길 반복한다.

“너 국문과 아니지?”

“야..그거 4학년 돼야 배워”

두 사람이 고른 메뉴는 산채비빔밥이다. 인우는 숟가락을 들고 맛있게 밥을 비비고, 한 입 크게 먹으려다 태희의 것과 그릇을 바꾼다.

당초 시나리오 대본에 이 신은 허름한 중국집으로 설정됐다. 크랭크인 후에는 가을 마곡사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사찰이라는 장소적 배경이 영화가 내포한 죽음과 환생, 인연이라는 메시지를 한층 단단하게 만들어 준 셈이다.

마곡사 매표소에서 오른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계곡을 따라 식당이 늘어서있다. 바람 부는 평상에도 잠시 앉아본다.

마곡사 매표소 오른편 계곡가에 평상이 있는 식당들이 늘어서있다.
마곡사 매표소 오른편 계곡가에 평상이 있는 식당들이 늘어서있다.

시간이 흘러 인우는 군 입대를 앞두게 된다. 짧은 헤어짐은 곧 영원의 이별로 이어진다. 인우의 입대 날, “늦더라도 꼭 기다려야 해” 당부했던 태희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새벽 기차역엔 인우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2000년 봄. 인우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새학기 담임을 맡은 인우의 첫 인사도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지금 니들 앞에, 옆에 있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엄청난 확률로 만난 거고 또 나하고도 그렇게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 거다.”

17년 전 소낙비가 쏟아지던 여름에 만난 태희처럼. 같은 버릇을 가지고 과거의 이야기를 읊는 동성의 제자 현빈(여현수)이 나타나면서 인우의 생에 균열이 생긴다.

충남 공주 마곡사 여름 풍경.
충남 공주 마곡사 여름 풍경.

영화 후반, 17년 전 태희의 소망대로 뉴질랜드에 도착한 둘. 젓가락과 숟가락 이야기를 했던 가을 산사에서의 기억 그대로 이곳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번지점프대, 파란하늘, 맞잡은 두 손. 카메라 프레임은 떨어지는 두 사람을 비출 것 같지만 이내 끝없이 이어진 산줄기와 강물로 시선을 옮긴다. 돌이켜보니 영화의 첫 장면과 이어진다.

두 사람의 죽음이 곧 삶으로 연결 될 것이라는 확신은 끝없이 흐르는 강물로 암시된다. 지구 어디선가 두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만나리라.

마곡사를 다 둘러봤다면, 백범 명상길을 걸어봐도 좋다. 조용히 숲길을 걸으면 영화의 여운도 더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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