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직장 내 괴롭힘,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 한지혜 기자
  • 승인 2020.07.31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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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공공기관, 수 년 째 직장 갑질 방기
부당 전보에 가해자 분리 조치 미온 ‘책임 회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대한민국 직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8%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답했다. 마땅한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회사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법의 맹점 때문이다.

가장 모범적이어야 할 공공기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직원들의 감사 요청을 묵살하거나 신고 피해자에 오히려 부당한 인사 조치를 내린 사례도 빈번하다. 직장에서 떠나게 되는 사람은 오히려 피해자인 셈이다. 

수 년 째 지속되고 있는 세종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통해 조직 내 2차 피해, 미온적 후속 조치 등 갑질 문화 개선이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수 년 째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반복돼 온 농림부 산하 공공기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홈페이지.
수 년 째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반복돼 온 농림부 산하 공공기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홈페이지.

세종시 공공기관 직원 A 씨(30대·남)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다. 2015년 입사 직후 지난해 초까지 상사와 동료로부터 폭언과 폭행, 성희롱에 시달려온 것으로 판명됐다.

상사 B 씨로 인한 괴롭힘 피해는 근로복지공단 조사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하지만 질병휴직을 중단하고 회사로 복귀하고자 하는 A 씨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1심 법원 판결 이후에도 가해자가 여전히 회사에 남아있는 등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실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주년을 앞두고 시행한 설문조사(19~55세 직장인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상급자 등에게 직장 갑질을 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5.4%로 집계됐다.

노동청에 신고하거나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경우는 3%에 불과했다. 신고 후 ‘부당한 처우를 경험했다’고 대답한 비율도 43.3%에 달했다.

피해자 A 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건 발생 당시 A 씨는 내부 감사 부서에 괴롭힘 사실을 알렸으나 묵살당했다. 돌아온 건 강원도로의 전보 조치. 12개월 딸을 둔 A 씨는 우울증과 함께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야했다. 당시 인사 조치가 직장 내 괴롭힘 2차 가해에 해당됐다는 사실은 ‘부당 전직인사 무효 확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증명됐다.

법원은 올해 1월 “피고인을 강원도 본부로 전보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배우자와 12개월 딸아이를 둔 피고인이 장거리 주말부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불이익을 입게 된 점 등을 종합하면 피청구인의 인사권 재량을 넘어선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A 씨는 가해자를 폭행·폭언으로 형사 고소했다. 지난 4월 법원은 가해자 B 씨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현재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법원은 “피고인이 본부 인재개발부 사무실에서 피해자를 폭행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되므로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양형 이유로는 “부하직원에 대한 폭행과 모욕을 가한 것으로 죄질이 상당히 불량한 점, 피고인이 폭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는 점, 피해자가 병원에서 중증도 우울에피소드와 적응장애 진단을 받은 점, 오히려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해 또다시 정신적 고통을 준 점 등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이라며 “피고인의 나이, 범행의 동기와 수단, 범행 전·후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유형 중 하나인 성희롱 피해도 인정됐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올해 초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2조(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에 따른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회사에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회사 측은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를 열어 가해자 B 씨에게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회사가 가해자 방패막이 자처" 

회사 측은 최초 자체 징계위원회를 열고, 가해자 B 씨에게 해임 판정을 내렸다. 이후 소송 1심 판결 일주일 전 재심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강등으로 징계 수위가 감경됐다. B 씨는 현재 직위해제 상태로 여전히 근무 중이다.

피해자 A 씨는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문제 발생 시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가 제일 먼저 이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부당 전보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며 “같은 피해를 호소하며 회사를 떠난 퇴직자들이 여럿 있고, 내부에도 괴롭힘 피해를 알렸던 직원들도 있다. 대법원 판결까지 얼마의 시일이 걸릴지도 모른다. 회사는 수 년 째 문제를 방기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A 씨는 회사가 가해자 편에 서고 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또다른 문제도 제기했다.

직장 내 괴롭힘 사안 관련 자문을 해온 회사 내 자문변호사가 가해자 B 씨의 형사 소송 법률대리인으로 선임된 점 때문. 1심 법률대리인은 지난해 10월 이 회사 자문변호사로 위촉됐고, 이후 B 씨의 형사소송 변호사로 선임됐다.

피해자 A 씨는 “회사 자문 변호사가 회사 밖에서 같은 사안을 다룬 소송을 맡으며 여전히 회사 내 자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며 “또다른 자문변호사도 현재 가해자 2심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다. 회사는 자문변호사 계약해지든 개인 변호활동 중지 요청 등의 조치를 취하는 대신 이를 방치하면서 오히려 가해자를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본부 감사 부서 관계자는 “형사 사건 변호사 선임 후 재판 진행 과정에서 자문변호사가 직원 법률대리인으로 선임된 사실을 인지했다”며 “자문 계약 당시 따로 제한한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내부에서 따로 조치하긴 어렵다. 현재로서는 이 사안에 대한 자문은 받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산하 공공기관을 관리·감독해야할 상급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도 직장 갑질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농림부는 올해 초 본청 내부 부서에서, 지난해 산하 공공기관인 농업정책보험금융원 등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해 이미 논란이 된 바 있다. 

농림부 감사실 관계자는 “현재 감사원에서 해당 사안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내용을 접했고, 부처에도 이전에 감사 접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앞으로 진행될 감사원 감사 자료 요청 등에 최대한 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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