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간 통합 문제는 입장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통합이 두 도시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식으로는 논의가 진전되기 어렵다. 한쪽에선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상대 쪽에서 아무런 귀띔도 없이 느닷없이 “우리 합치자”고 공개적으로 요구해오면 호의보다는 경계심부터 갖기 마련이다.

지난 주 허태정 시장이 대전-세종 통합을 공개 제안한 데 대해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보였다는 반응이 눈길을 끈다. <서울신문>은 양승조 충남지사가 비서실을 통해 “허 시장이 이러한 얘기를 한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행정구역을 통합하자는 제안이라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물론 당사자인 이춘희 세종시장과 세종시 공무원들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허 시장의 통합 제안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자치단체장조차 거부감을 느낄 만한 회견이었다. 허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대전형 뉴딜 기본계획’을 발표하던 중 갑자기 행정수도 완성과 국가 균형발전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전과 세종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날 통합 제안에 대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제안)’라거나 ‘전격 제안’이란 수식어가 붙어 보도됐다.

허 시장의 통합 발언이 정말 예정에 없던 것으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라면 시장의 실수가 분명하다. 허 시장은 사전에 세종시 측과 교감이 있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서 통합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두 도시 통합에 대해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것을 불쑥 꺼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 얘기가 나오면서, 이 과정에 대전-세종 통합카드를 끼워넣는 방안을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대전-세종 통합은 시장이 ‘갑툭뒤’로 제안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상대 배려하지 않는 ‘통합’ 성공 어려워

허 시장이 세종시와의 통합을 중요하고 절실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행정구역 통합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겐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고, 지역 정서와 지역 주민의 자존심 등의 문제로 번지기 쉬운 일이어서 일을 그르치면 타협이 쉽지 않다. 청주시와 청원군은 통합 얘기가 나온 지 20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성공했다. 청주시는 물론이고 청원군에서조차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통합 시도가 잇따라 불발에 그치곤 했다. 10여 년 전 경남에선 마산 진해 창원이 행정구역 통합에 성공했으나 3곳 모두 ‘광역시 승격의 꿈’이라는, 같은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전 세종 통합은 명분도 있고 필요성도 있다. 두 도시 모두에게 자족기능을 확대하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수단이다. 특히 대전의 입장에서는 유리하다. 그러나 세종시 입장은 다를 수 있다. ‘행정수도’라는 지위와 정체성을 갖고 있는 세종시는 대전과의 통합이 도시의 정체성을 퇴색시킨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통합의 필요성을 덜 느끼거나 오히려 반대할 수 있는 요인이다. 허 시장의 제안에 즉각 비판 성명을 낸 정의당 세종시당의 의견이 세종시 주민 일부만의 생각으로 보긴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의 이전 방침이 발표되자, 세종시 아파트 값이 1억 원 뛰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전도 세종과 합쳐서 대한민국의 수도가 된다면 그 덕을 좀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대전시장의 느닷없는 통합 제안이 이와 무관한 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전-세종 통합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수도권 부동산 광풍’을 잠재우려 내려오는 청와대가 지방에서 다시 광풍을 일으킨다면 안 될 일이다.

두 도시의 통합은 서로 뜻이 맞아야 성공할 수 있다. 한쪽이라도 반대하면 어렵다. 허 시장의 통합 제안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갑툭튀’로 나왔다면 심각한 실수다. 의도된 발언이라고 해도 통합의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방식은 통합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허 시장이 세종시와 통합을 정말 원한다면, 통합은 못하더라도 통합을 원하는 시장이란 평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통합도 통합이지만 이런 회견은 시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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