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영화 속 소제동 100년 골목과 재개발
7080영화 속 소제동 100년 골목과 재개발
  • 한지혜 기자
  • 승인 2020.07.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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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IN충청-⑩] 역 뒤편 철도관사촌 옛 풍경
대전 뉴트로 성지 발돋움… 재개발 사업, 일부 철거

대전·세종·충남 지역 곳곳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촬영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 명대사와 인상깊은 장면들을 회상하며 지역 관광 명소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방문객들의 오감만족은 물론 추억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촬영지 명소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내 주택 모습. (사진=대전 동구 공정관광 박진석 PD)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내 주택 모습. (사진=대전 동구 공정관광 박진석 PD)

이끼 낀 나무 전봇대, 100년 된 목조 주택과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길. 대전역 뒤편 동구 소제동에 100년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일제강점기 시대 철도 종사자들이 거주하며 형성된 곳이다. 1905년 경부선이 생기면서 일본인 철도 기술자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대전은 이후 ‘철도의 도시’로 급부상했다.

1956년 건립된 소제동 철도보급창고(등록문화재 제168호)는 이를 증명하는 건축물 중 하나다. 이 창고는 철도청 물자를 이동·보관하는 역할을 했다. 근대 목조 건축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문화재로 지정받았다.

100여 채 관사 중 북관사촌, 남관사촌은 한국전쟁을 겪으며 대부분 허물어졌다. 현재는 동관사촌인 솔랑시울길을 따라 약 30여 채만이 남아있다. 군데 군데 남아있는 관사를 제외하고는 시멘트 벽돌집이 들어섰다. 관사촌에 일반인이 들어오기 시작한 1960~70년대, 지금의 소제동 토박이들이 둥지를 틀었다.

이발소와 골목 슈퍼, 세탁소가 지금도 문을 열고 있다. 오래된 간판은 옛 기억을 소환한다. 열린 문 틈 사이로 라디오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흑백
영화 쎄시봉 장면에 나온 여자주인공 자영의 친구 집 대문.

1970년대 한국 포크음악계 전설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유명 음악감상실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 쎄시봉(C'est Si Bon, 2015)에서도 소제동 골목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초반 남자 주인공 근태(정우)는 얼떨결에 트리오 쎄시봉 데뷔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음악감상실의 뮤즈 자영(한효주)에게 한 눈에 반한 그는 그녀를 위해 노래하기로 결심한다.

근태는 자영과 거리를 거닐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때 자정을 알리는 통금 사이렌이 울리고 두 사람은 차 없는 도로를 함께 뛰어간다. 윤형주 작사 번안곡 ‘우리들의 이야기’ 노래가 깔린다.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두 사람이 멈춘 곳은 자영의 친구 연숙의 집 앞. 소제동 골목에 위치한 초록 대문 집이다.

자영은 연숙의 이름을 부르며 철문을 두드리고, 근태는 자영의 뒷모습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근태의 모습 뒤로 달빛이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비춘다. 친구 연숙이 대문을 열고 나오자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방범대원은 근태의 오른팔을 잡아 끌고 간다. 이때, 자영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근태에게 입을 맞춘다.

‘우리들의 이야기’ 노랫말이 이어진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360도로 비추고, 이내 두 사람에게서 멀어진다. 스크린을 채우는 장면은, 소제동 골목길 풍경이다.

'밤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 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 우리들의 이야기(윤형주 작사, 번안곡) 中

영화 쎄시봉에서 남녀주인공 근태와 자영이 늦은 밤 귀가하는 장면 속에서 등장한 소제동 골목 전경. (사진=)
영화 쎄시봉에서 남녀주인공 근태와 자영이 늦은 밤 귀가하는 장면 속에서 등장한 소제동 골목 전경. (사진=)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A Taxi Driver, 2017)에도 소제동 풍경이 담겼다. 줄거리 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면 일부가 이곳 가정집에서 촬영됐다.

영화는 1980년 5월 서울과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오면 거금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와 함께 떠난다.

검문을 뚫고 겨우 도착한 광주. 밤이 늦어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만섭은 혼자 둔 어린 딸 걱정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만섭은 광주에서 만난 대학생 재식(류준열)과 함께 조력자 황 기사(유해진)를 만나 그의 집으로 향한다. 조용한 골목을 지나 멈춘 작은 식료품점. 황 기사의 아내가 세 사람을 맞이한다. 다음 장면은 집 안이다. 

황 기사의 아내는 세 사람을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 내어온다. 어린 아들도 무리에 껴있다. 일상의 대화가 오가고, 바깥 광주의 참혹상이 황 기사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과 대비되는 따뜻한 집안 풍경은 안도감을 자아낸다. 

영화 속에서 이보다 안전한 장소는 없다. 감독이 왜 조력자인 황 기사의 집 외부 풍경을 찍기 위해 소제동을 택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성민·박해준 주연의 영화 ‘제8일의 밤(감독 김태형)’ 촬영도 소제동 골목에서 진행됐다. 영화는 봉인에서 풀려난 악과의 사투를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완전과 불멸,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숫자 ‘8’이라는 무한한 기호를 통해 혼돈의 세상을 보여준다. 개봉은 올해 예정돼있다.

소제동 목재 관사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
소제동 목재 관사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 소제동 아트벨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뉴트로(New+Retro, 새로움+복고) 열풍을 타고 이곳은 몇 년 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부 관사 건물은 ‘소제동 아트벨트’ 프로젝트를 통해 전시·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골목 곳곳에는 주택을 개조한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섰다.

‘관사 몇 호’로 불리던 오래된 주택은 핑크집, 두충나무집, 마당집이라는 새로운 별칭이 붙었다. 주인이 떠난 주택에 마당과 나무, 벽면과 기둥 구조 등을 그대로 살려 새 주인들이 들어왔다. 

앞으로도 이곳이 영화 촬영 명소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삼성동과 소제동 일원을 중심으로 ‘삼성 4구역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 관사 건물 일부분이 도로정비사업에 포함돼 일부 철거될 예정이다. 영화 속 장면이 소제동 골목을 기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다행이 대전시는 올해 4월 재개발지역인 동구 소제동과 삼성동 일원을 도시기억프로젝트 대상지로 선정했다. 재개발로 사라질 지역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업이다. 건축물과 골목 형태는 물론 오래된 전봇대와 맨홀 뚜껑까지, 크고 작은 물리적, 경관적, 삶의 이야기까지 모든 것을 기록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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