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IN충청-⑨] 부여 궁남지…백제무왕 ‘서동요’ 전설 담긴 국내 최고(最古) 인공연못
‘관상’ ‘도리화가’ ‘서동요’ ‘황후의 품격’ ‘계백’ 등 촬영…천만송이 연꽃 향연 장관
한지에 달빛 스미듯/ 스며든 연꽃 미소
서동 선화 고운사랑/ 시공 넘어 펼침인가
궁남지 둘레 둘레에/ 찍어놓은 연지곤지
바람은 입김 불어/ 연꽃을 피워내고
-유준호 시인 <궁남지 연꽃> 中-
충남 부여군 궁남지(부여읍 궁남로 52)의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면 시 한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1300여 년을 관통하는 ‘서동요(薯童謠)’의 러브스토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습지였던 이 일대를 1965년 부분적으로 복원하면서 지난 2002년 4만5527㎡ 규모로 복원한 궁남지. 연꽃단지에는 수련, 백련, 가시연 등 50여종의 다양한 꽃과 30여종의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트리며, 물고기와 조류 등이 어우러져 장관이 펼쳐진다. 연못 안의 ‘포룡정(抱龍亭)’이라는 정자와 주변의 버드나무는 화룡정점.
궁남지의 사계절은 모두 아름답다. 특히 천만송이 연꽃이 피는 7~9월이면 전국에서 수천 명의 관광객과 사진작가가 몰린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취소됐지만 매년 ‘부여서동연꽃축제’도 열린다. 가을에는 굿뜨래 국화전시회가 열리며 겨울 설경과 봄의 싱그러운 풍경도 궁남지가 주는 선물이다.
야경은 더욱 환상적이다. 형형색색 조명과 연못, 연꽃과 선선한 밤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 잊지 못할 낭만을 선사한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7월에 가볼만한 야간여행 명소 6곳에 궁남지를 선정하기도 했다.
궁남지의 포룡정과 목조다리는 영화 <관상>에서 배우 조정석이 수양대군 이정재에게 조카를 살려달라고 만나는 장면의 배경이 됐다. 이 외에도 <서동요>, <황후의 품격>, <라디오 로맨스>, <대왕세종>, <신의>, <도리화가> 등 다수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역사’와 ‘이야기’다. 궁남지는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궁원지(宮苑池)다. 선화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사적 제135호)이다. 당시 기술력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이런 규모의 인공연못을 만들었다면 그 깊이는 가늠하기도 힘들 터.
실제 삼국사기에는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 이가십여 리(약 8㎞)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한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어 신선 사상을 표현했으며 연못의 경계를 물의 흐름대로 형성되도록 자연스러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동아시아 조경사 연구의 중요한 유적이기도 하다. 조성기록이 명확할뿐 아니라 백제의 조경기술과 도교문화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궁남지의 조경기술이 일본 원지 조경의 원류가 됐다고 전한다.
여기엔 무왕의 탄생설화와 서동요의 러브스토리도 담겨 있다.
백제 법왕의 시녀였던 무왕의 모친은 이곳에서 용신(龍神)과 통해 무왕을 낳았다. 포룡정의 이름 역시 이 전설에서 유래됐다. 아이는 서동이라 불린다. 마를 캐는 아이라는 뜻이다. 서동은 신라를 정탐하라는 왕의 밀명으로 서라벌에 잠입하다 미모의 선화공주에게 반한다.
국적이 다른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서동은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며 “서동을 밤마다 안고 잔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것이 향가 ‘서동요’다. 이 때문에 선화공주는 백제로 쫓겨났고 서동은 사랑을 쟁취한다. 또 아들이 없던 법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무왕은 사랑과 권역을 모두 손에 넣은 성공한 야망가다. 하지만 무왕의 아들 의자왕에서 백제는 운명을 다하게 된다. 궁남지의 경관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오는 것은 1300년을 관통한 선화공주와 서동의 애절한 사랑과 함께 백제의 영화와 망국의 한을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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