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과 그 지지 세력이 사라진다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자료사진.

현 정권의 최대 정적인 미래통합당과 그 지지 세력이 한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 국민 중에 현 정권에 반대를 일삼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부하 여직원의 추행 사실이 탄로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관대작을 기관장(葬)으로 치러주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여 검사가 그 고관과 팔짱을 낀 사진을 올리면서 “나도 추행범”이라며 피해여성을 조롱하는 일도 나오기 어렵다.

‘태평성대의 나라’를 상상해보자. 한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려 그를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다. 거의 모든 백성들이 임금을 존경하며 따른다. 임금은 그럴수록 더 정치를 잘하고 백성들은 평화로운 삶을 누린다. 그런데 한 명망 있는 고관이 여직원 추행 사실이 드러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관의 공이 하늘을 덮을 정도라 해도 기관장(葬)으로 치러주진 않을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새로운 개념까지 개발해서 가벼운 성희롱조차 처벌받는 오늘날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상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추행 고관의 기관장’

그런데도 국민 세금으로 장례를 치른다면 죽은 자의 공이 너무 크고 안타까움이 지극해서가 아니다. 기관장으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편’의 불미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공격해올 ‘반대편’ 때문이다. 통합당을 위시한 현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이 존재하는 탓이다. 반대파가 모두 사라지고 없다면 기관장 같은 일은 꾸밀 필요가 없다. ‘반대편’이 없으면 맘 놓고 기관장을 할 수는 있으나 오히려 반대다. 보통 국민들의 원성만 살 게 뻔한 그런 장례식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번에 기꺼이 그런 장례식을 택했다. 서울시 혼자의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 상층부 뜻을 묻지 않았을 리 없다. 누가 먼저 제안하고 누가 결정했는지는 모르나 양쪽 모두 원하는 방식이었다. 고관의 총애를 받았을 서울시 간부에겐 보은의 기회이고 정권에겐 죽음의 의미를 포장해보려는 시도였다. 만일 야당 시장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기관장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여당 시장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공은 공대로 인정해야 된다’는 말도 다 맞는 건 아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으나 잘못을 반성하고 공을 세우면 공이 인정된다. 그런 공은 더 빛이 난다. 반대로 과거의 공이 아무리 커도 후에 자기 여직원을 상습 추행한 일이 밝혀지면 그 공조차 까먹는다. 시인도 그러할진대 정치인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공을 인정받으려면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공을 쌓아야 한다. 고관은 힘들더라도 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추행 고관의 죽음에 과거의 공을 들먹이며 기관장으로 치러주는 나라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과거 같으면 해외토픽에서나 들을 법한 일을 국민들은 목격했다.

근본적 이유는 ‘극단적인 분열’에 있다. 대한민국은 두 동강 나 있다. 한쪽에선 검찰총장을 끌어내리려고 100만이 모이고, 또 한쪽에선 검찰총장을 지키려고 100만이 모이더니, 마침내 법무장관이 검찰총장 노릇까지 하면서 2명의 총장이 사건을 지휘하는 나라가 됐다. 금번 국회의 상임위원장 배분은 결국 18대 0 여당 독식으로 끝났고, 고관의 기관장에 100만 명이 온라인 헌화에 참여했으나 청와대 홈피에 기관장 반대의 뜻을 표한 사람도 50만 명이 넘었다. 극단적 분열을 말해주는 기록들이다.

어느 사회나 갈등과 분열은 있다. 건전한 경쟁의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심하면 추행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까지 기관장을 치러주는 비정상의 사회로 간다. 이번 기관장은 어떤 경우에도 반대파에 밀려선 안 된다는 일념과 고집에 다름 아니다. 여권 인사들이 추행 고관을 ‘맑은 분’으로 칭하고,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는 것도 극단적 분열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상대편의 공세를 피하면서 우리편을 방어하고자 하는 언사들이나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제자가 공자(孔子)에게 정치를 하면 무엇부터 하시겠느냐고 묻자 답한 말이 ‘정명(正名)’이라고 한다. “이름을 바로잡겠다”는 말로 정치의 명분을 바로하겠다는 뜻이다. 공자는 “명칭(부르는 말)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자연스럽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자연스럽지 못하면 일(업적)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했다. 말이 꼬이는 정치는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억지로 명분을 만들면 그 말은 자연스러울 수 없다.

말이 꼬이는 정치는 완력과 수(數)에 의존

말이 꼬이고 명분이 떳떳하지 못한 데도 억지로 이기려면 ‘완력’과 ‘수(數)’에 의지하게 된다. 권력으로 짓누르거나 언론 등을 통한 여론전으로 민심을 우리편으로 끌어 모아야 한다. 이 정권은 두 가지 모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지금 법무부장관의 최대 임무는 검찰을 짓눌러서 제 역할을 못하게 하는 것이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입바른 소리하는 언론사 옥죄기가 존재의 목적이다. 유력 신문사 소유 종편의 재승인권은 신문사를 협박하는 수단이 되었다. 

대통령은 국회를 찾아 협치와 적대정치 청산을 언급했지만 공허하기 그지없다. 협치와 적대정치 청산은 상대방과의 타협과 양보를 전제로 하는데 타협과 양보는 이 정권에게 가장 낯선 용어 가운데 하나다. 대신 고집과 독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사도 최저임금도 탈원전도 선거법도 북한문제도 오직 마이웨이, 우이독경이었다. 그 결과는 국민들이 아는 대로다. 어떤 정책이든 완전할 수는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하거나 바로잡는 게 당연하다. 현 정권에겐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고 그런 척도 안한다. 

상당 부분은 정책에 대한 확신보다 ‘반대파의 존재’가 그렇게 만든다고 본다. ‘망하면 망했지 당신들 말처럼은 할 수 없다!’는 아집 때문이다. 정권이나 사람이나 이런 것 때문에 자주 낭패를 본다. 인사(특히 조국장관 임명), 최저임금, 탈원전 등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반대파에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일념이 고집의 진짜 이유로 보인다. 내편에겐 ‘뚝심과 소신’으로 인정받고 득표에도 일시적으로 유리할 수 있으나, 결국 추행 고관까지 기관장으로 치러주는 이상한 나라로까지 가고 있다. 정권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반대파인 통합당과 그 지지 세력을 완전히 없애는 게 상책일 텐데 무슨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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