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느끼는 삶의 교훈 '사람은 배워야 한다'
다시금 느끼는 삶의 교훈 '사람은 배워야 한다'
  • 나창호
  • 승인 2020.07.0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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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의 허튼소리] 전 충남도 부여부군수, 수필가

나창호 수필가.
나창호 수필가.

편파 방송을 일삼는 TV를 안 보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지만, 언제부턴가 신문마저 뒤쪽부터 읽는 버릇이 생겼다. 신문 뒤쪽의 오피니언들의 글과 사설을 읽고 나서 거꾸로 앞쪽으로 넘기며 굵은 글씨의 제목만을 훑어보는 버릇이다.

신문을 1면부터 읽어 나가자면 마치 백내장 낀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고도근시를 가진 사람들이 국정을 다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앞면부터 뒤쪽으로 가며 기사를 읽고, 뒷면의 오피니언 란과 사설을 읽었는데, 지금은 아예 뒷면부터 펼쳐드는 버릇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구독료 주며 보는 신문을 아주 안 읽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정치와는 거리가 먼 섹션신문에서 흥미 있는 기사나, 어떤 특별한 사연이 실린 기사를 골라서 읽기도 한다. 
 
지난 토요일(6월 27일)에도 섹션신문에서 독특한 사연의 기사를 읽었다. ‘중졸 아빠, 게임중독 중졸 형제를 직접 가르쳐 서울대로’ 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처음에는 대충 훑어보려다가 ‘중학교 졸업 때까지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해 고교 진학도 못하고 막노동’ 하는 아버지가 게임중독에 빠진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나 하는 호기심이 들어 기사를 끝까지 읽게 되었다. 

사연을 소개해본다. 그는 가난해서 못 배운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시청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공부를 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난독증-‘홍’자를 보면 ‘홓’자로 보이는 등 한글 글자가 마치 아랍문자처럼 보였다는 것-이 있어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 했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막노동을 했다. 한글을 못 읽는 그는 사회에서 갑질을 많이 당했다. 사람들이 그를 바보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35세 때 은행장으로 있는 아버지 친구가 소개해준 동갑내기 고졸 출신 은행원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됐고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은 게임중독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진학을 포기하고, 작은 아들은 아토피가 심해 고1 때 중퇴했다고 한다. 두 아들은 전국을 다니며 막노동하는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늘 PC게임에 빠졌고 가출도 수시로 했다고 한다. 

‘어버이날, 우리 아빠는 무식하고 별 볼일 없는 막노동꾼이다.(2006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큰 아들이 쓴 카드를 발견하고 그는 며칠 동안 멍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아내 덕에 난독증을 고칠 수 있었다. 그의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 아내가 글공부를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선정해준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이는 한글 1500자-보통 크기보다 훨씬 크게 쓴 글자-를 외우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글을 배우고 나니 아내가 이제 다른 공부도 하자고 해서 ‘나이 마흔다섯이면 십, 이십 년 살다가 죽을 건데 공부해서 뭐하냐’고 하니, 아내가 ‘100세 시대가 온다, 아직 반도 안 살았다’고 했다 한다. 앞을 내다보는 훌륭한 부인이 아닐 수 없다. 

처음은 초등학교 3∽4학년 사회·과학 교과서로 시작된 공부였지만, 갈수록 재밌고 자신감도 생겨 마침내 수능 공부까지 시작하게 됐는데, 그의 아내가 EBS 수능교재를 그가 볼 수 있는 크기의 글자로 옮겨 만들어준 그만의 교재와 영어 단어장을 늘 품고 다니며 공사장은 물론 길거리나 식사시간, 잠자기 전 등을 가리지 않고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공부했다 한다. 이렇게 공부를 시작한 지 7년쯤 됐을 때 수능 모의고사를 풀어 7번 모두 만점이 나왔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2013년에 공중파 TV 프로그램에 ‘공부의 달인’으로 소개까지 됐다고 한다. 이는 모진 인내와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의 아내가 누구보다 현명하고 헌신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실력을 갖춘 그는 그와 똑같이 중졸이 된 두 아들을 가르쳐야 했는데 절대로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임을 그만 두라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들과 소양강을 따라 하루 8시간씩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아들들은 들으려 조차 하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산책이 끝나면 마음껏 게임을 하리라 마음먹던 아들들이 피곤해서 게임을 오래하지 못했고, 게임 시간이 점점 줄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중학교만 마치고 진학을 포기한 채 게임에 빠진 큰아들을 그의 막노동 일터-공사장·주유소·세차장 등-에 데리고 다녔다 한다. 이렇게 1년 반 동안 전국 8000km를 돌아다니고 나니 아들이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막상 막노동을 해보니까 중졸로 직업을 선택한다는 게 불가능함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7년 동안 공부한 비결과 시험 보는 요령을 아들들에게 전수했고, 수능 전 과목도 직접 가르쳤다. 큰 아들은 두 달 만에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다음해에 수능을 본 뒤 연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는데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7개월 만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점수가 덜 나왔다고 생각한 큰아들은 연세대에 등록하지 않고 재수해서 1년 후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고 한다. 

둘째 아들은 아토피 등으로 건강이 안 좋은데도 그의 가르침으로 공부를 해 2015년에 서울대 간호학과에 합격했다고 한다. 현재 큰 아들은 로스쿨을 준비 중이고, 작은 아들은 4학년에 재학 중이란다. 훌륭한 아버지에 훌륭한 자식들이 아닌가 싶다. 아니 모진 고통을 감내하면서 남편을 깨우치고 공부시킨 현명한 아내 덕이 아닌가 싶다.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그는 글을 깨치지 못했을 것이고, 아들들을 가르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아들들은 끝내 배움을 포기한 채 사회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펼친 삶의 드라마가 감명 깊어 여기에 그 사연을 소개했다. 한편으로 그들이 더 늦기 전에 배움의 길로 들어선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긴다. 배움에는 때와 시기가 있다.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는 것이 힘이라 했다. 가능한 제 때 배워야 한다. 배움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달을 꾀하고 사회에도 공헌해야 한다. 자기 자식들은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경력까지 위조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는 “도랑에서 붕어나 가재로 살아도 된다”거나, 자기 아들은 학비 비싼 영국에 유학을 시키면서 “배웠다고 필기시험에 합격해 비정규직 보다 2배의 봉급을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배움 의지와 진취의욕을 꺾을 일이 아니다. 이래서는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지 못한다. 

나는 가끔 할머니들이 늦게나마 한글을 깨쳐 이름도 쓰고, 시까지 지으며 좋아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 좋기도 하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겹친다. 할머니들이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을까 좀 더 일찍 글을 깨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시내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식당 벽 한편에 작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공부하는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을 간다.’ 

나는 한동안 이상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왜 액자를 거실에 걸지 않고 식당 벽에 걸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식당 주인이 못 배운 한이라도 맺힌 것일까? 그렇다고 식당에 다시 돌아가서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는 일. 나는 배움에는 때가 있으니 누구라도 더 늦기 전에 배우라는 식당주인의 충고라고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배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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