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앞의 S와 노래하는 여인들, 2020-05, 송선헌, 내가 사랑하는 S의 실내악곡 집 4LP(DECCA)의 표지(클림트, 1899) redrawing
피아노 앞의 S와 노래하는 여인들, 2020-05, 송선헌, 내가 사랑하는 S의 실내악곡 집 4LP(DECCA)의 표지(클림트, 1899) redrawing

1.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S의 삶
 S가 4살까지 살았던 생가는 빈(Wien) 누스도르퍼 슈트라세(Nussdorfer Strasse) 54번지 2층집이다.
S의 생가는 박물관이 되었고 쇼텐토어 지하철역에서 37~38번 전차를 타면 네 정거장이고 7분 정도 걸린다. 
S는 죽기 1년 전에야 피아노를 장만할 정도로 全생애는 고달팠지만 작품들은 혁신적이었다.
S는 피아노가 없을 땐 Guitar로 작곡했다.  
S는 16 형제 중 13번째로 태어났고 5명(2녀 3남)만 생존했다.
S의 아버지는 기숙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7살 연상의 요리사로 갑자기 사망, 아버지는 바로 S보다 14살 위 새엄마를 맞았고 생가 1층을 학교로 2층은 집으로 사용했다.  
S의 성격은 온화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S는 6살 때부터 피아노 등을 배웠지만 아버지는 반대해 갈등관계였다. 
S는 어린 시절 탁월한 미성의 소유자로 11세에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이며, 궁정 악장 살리에리(1750~1825)가 선발한 슈타트콘빅트(Stadtkonvikt, 황실이 운영하는 영재 소년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합창단원이 된다. 그러나 변성으로 중퇴, 특별한 재능으로 살리에리의 제자로 작곡을 배웠고 이후 軍면제(당시는 징병제)를 위해 아버지 학교의 조교사(교사는 면제)로 일했다.
S는 내성적, 곱슬머리에 숏다리, 찐한 눈썹, 들창코, 단신(≒152~7cm, 모차르트보다는 7cm 더 큼)이었다.  
S는 땅딸막한 체형으로 별명이 꼬마 버섯(Schwammerl), 마시멜로, 뚱보였다.
S는 아버지와의 대립으로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음악 가정교사 레슨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S는 19살에 살리에리의 추천장으로 음악교사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S가 살았던 1800년대의 빈은 문화부흥의 도시로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브루크너·브람스·말러와 같은 음악가(S만 토박이)를 포함한 예술가들의 성지였다.
S는 순수한 청년으로 연주모임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슈베르트의 밤)는 그의 천재성을 표출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S의 친구들이 괴테의 시를 이용한 작품 몇 개를 괴테에게 보냈지만 일설에는 전달이 안 되어 S가 죽고 나서야 괴테는 곡을 듣고 감탄했다고 한다.
S는 18세(1815)에 무려 145개의 가곡(이틀에 한 곡씩 작곡)과 2개의 교향곡 등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S는 1818년, 에스테르하지 백작 가문의 피아노 교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저택의 하녀에게서 또는 86세까지 장수한 친구 쇼버랑 사창가를 다녀 매독이 전염되었다는 설이 있다.  
S는 1823~1825년, 입-퇴원을 반복했고 금기의 사회적 Stigma인 매독 치료(수은연고)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다 빠져 가발을 썼다. 
S는 1827년, 죽음을 예감한 듯 뮐러의 시집에 곡을 붙인 24개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 Wanderer)를 작곡했다.
S는 27살이나 많고 평생 경외하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LVB)이 2km도 안 되는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죽기 1주일 전에 지인들의 주선으로 만났던 소심남이었다.
S의 악보를 보고 LVB은, ‘S 자네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자네는 분명 세상을 빛낼 훌륭한 음악가가 될 것이네. 부디 용기를 잃지 말게’라 했다. 
S는 쇠약해진 LVB의 모습에 방을 뛰쳐나와 울었다.
S는 LVB이 세상을 떠나자(1827) 크게 울었고 운구(運柩)했다.
S도 천재였지만 LVB은 평생 넘지 못할 그의 8848m이었다.
S는 투병 중에 라스트 모히칸(The Last of The Mohicans)도 읽었다. 
S는 1828년 32세를 2달 남긴 채 둘째 형 집에서 LVB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오지 못할 겨울여행을 떠났다.
S의 죽음 때 유럽인의 평균수명은 채 40살도 되지 않았다. 
S도 LVB이 묻힌 벨링크 묘지에 묻혔고 1988년 예술가의 판테온인 빈 중앙묘지로 이장할 때도 이웃이 되었다. 
S는 무명이었지만 후원자 존라이트너 백작의 주장으로 LVB 옆에 영면할 수 있었다.  
S의 Epitaph는 ‘음악은 여기에 빛나는 자산을, 아니 더 크게 빛날 수도 있었을 희망을 묻었다.’이다.
S와 LVB은 평생 독신이었다. 
S에게서 C'est la vie(셀라비, 그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극한의 고통 속에서만 꼭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는가?를 묻게 된다.


2. 작품세계
 S의 작품세계는 창작, 장르, 질적, 양적으로 최고봉이다.
S를 사후 널리 알린 사람은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다.
S의 998개 작품 중 633개가 가곡이어서 S는 가곡의 왕(King of song)이다.
S는 가곡의 시조로 슈만, 브람스, 볼프, 슈트라우스 등에 영향을 주었다. 
S의 작품 특징은 아름다운 멜로디이지만 예고되지 않은 전개, 즉흥 작곡, 길고 반복적인 요소가 연주자들에게는 좌절을 안긴다.
S는 급한 성격으로 Sketch, Fragment, Unfinished 작품이 많다.
S는 마왕(魔王, 18세)을 한 시간 만에 작곡했다고 한다. 
S의 마왕은 출판사에서 원작곡자 S에게 안 가고 동명이인 프란츠 안톤 슈베르트에게 가는 배달 사고가 일어났었단다.
S의 작품 번호는 Op(Opus) 대신에 오스트리아의 Otto Erich Deutsch가 연대기적으로 번호를 매긴 도이치(D) 번호를 사용한다.
S에게는 신기하게도 피아노 등 협주곡(Concerto)은 없다.
S의 피아노 3중주(D. 929) 2악장은 배리 린든(Barry Lyndon, 1975)과 해피 엔딩에 삽입 그리고 드라마 밀회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F단조는 화제였었다.
S의 피아노 5중주는 숭어(Gray mullet)가 아니라 민물고기 송어(Trout)다.
S의 Gag!, ‘슈베르트의 송어’를 듣고 작곡가와 제목을 적는 시험에 작곡가와 제목의 앞 글자가 같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자신 있게 답을 썼는데 ‘베토벤의 붕어’였단다. 
S의 겨울 나그네를 12번 녹음했다는 피셔 디스카우와 페터 슈라이어의 음반은 필수품이다.
S의 피아노 음악 중 나는 Alfred Brendel의 CD를 Wadia에 올린다.
S의 교향곡 8번 미완성, 송어, 가곡, 현악4중주, 피아노 소나타, 즉흥곡,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현악5중주... 등이 대중적이다.
S의 마지막 작품인 현악5중주 D. 956은 나의 장례식에 써 달라고 말할 것이다. 진심으로.


3. S와 안경
 S는 근시로 늘 동그란 금속테 안경을, 심지어 잘 때도 벗지 않았는데 이유는 꿈이 잘 보여서라고 했단다.
S는 근시 안경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용한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였다.  
S 당시에 안경은 신체적 약자임을 알리는 일이었다.  
S의 생가 박물관 입구엔 오스트리아 국기가 꽂혀있고, 내부엔 흉상, 초상 소묘, 초상화, 자필 악보 등이 빈약하게 놓여있고 S가 사용했던 Guitar와 나무결이 살아 있는 피아노, 초상화(1825)에도 나오는 귀걸이가 특이한 동그란 안경(The Brille)이 유리관 속이지만 현실처럼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다. 
시력 보정용 안경은 1280년 이탈리아 도미니크 수도사 스피나와 물리학자 알망티가 처음 발명했다.  
눈앞에 렌즈 위치를 고정시켜 안경을 쓰고 다닐 수 있는 것은 1797년, 그 전에는 코안경, 귀 뒷부분을 곡선으로 굽은 형태는 1890년 그리고 오목렌즈를 이용한 근시 안경은 1804년에서야 알려졌다. 
LVB도 마리 앙투아네트도 안경을 사용,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피했다. 
우리나라에 안경은 1580년경 즈음 중국을 통해 들어왔으며 다리가 없이 렌즈 양쪽에 끈을 달아 착용했고 애체(靉靆)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은 통신사(1590)로 일본에 갔다가 침략 징후가 없다고 오판한 동인 김성일(1538~1593)의 것이다.
정조도 공부를 열심히 해 안경을 애용했다고도 전해진다.
경주 남산(南山)의 남석(南石) 안경은 고급품으로 쉽게 깨지거나 김이 서리지 않는데 경주 최부자집에서는 이 일만하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단다.
조선시대에는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예법에 어긋났다.
맥아더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레이밴(Ray Ban, 라이방) 검은 선글라스와 김구, 매천, 간디, 존 레논, 스티브 잡스의 동그란 안경은 그들의 상징이다.
난, 라식으로 안경을 벗고 싶지만... 마음의 개안(開眼)만을 향해 부지런히 정좌(正坐)해야 한다. 


송선헌(宋瑄憲) 약력

송선헌 원장
송선헌 원장

치과의사, 의학박사, 시인

대전 미소가있는치과® 대표원장 

충남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외래교수

UCLA 치과대학 교정과 Preceptor and Research associate

대한치과 교정학회 인정의

대한치과교정학회 대전 충남지부 감사

2013년 모범 납세자 기획재정부장관상

2019년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장려상과 입상 수상

저서: 임상 치과교정학 Vol. 1(웰 출판사)

전)대전광역시 체조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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