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IN충청-⑥] 영화 ‘클래식’ 속 원정마을
통나무다리는 사라졌어도… 사랑은 그 자리에

대전 서구 원정동에 위치한 원정역. 간이역으로 운영되다 14년전 폐역이 됐다. (사진=대전 서구청 공식블로그)
대전 서구 원정동에 위치한 원정역. 간이역으로 운영되다 14년전 폐역이 됐다. (사진=대전 서구청 공식블로그)

6월 여름 장마가 시작된 첫 날, 원정마을로 향한다. 갈라진 논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기차가 지나는 곳. 흑석리역과 계룡역 사이, 한때는 간이역이었던 폐역 원정역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대전 서구 원정동에 위치한 원정역은 1955년 12월 간이역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2004년 여객 업무를 중단한 뒤 2006년 폐지됐다. 폐역이 된 지 14년. 지금은 붉은 벽돌 외형만 남았다. 대합실 문은 굳게 잠겨 있다. 호남선 기차는 이제 정차 없이 이곳을 지난다.

23번 연두색 시내버스를 타면, 원정역에 닿을 수 있다. 종점을 한 정거장 앞두고 하차하면 오른편에 바로 역사가 보인다.

역 맞은편에는 지붕 낮은 집과 주인을 지키는 누렁이가, 좁은 시골길을 따라가면 민가와 논이 펼쳐진다. 마을 안쪽,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평온한 시골 풍경 뒤로, 담벼락을 채운 벽화가 정겨운 풍경을 자아낸다.

폐역 원정역 내부 모습. 호남선 기차는 정차 없이 이곳을 지난다. 역사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있고, 철문은 자물쇠로 잠겨있다.
폐역 원정역 내부 모습. 호남선 기차는 정차 없이 이곳을 지난다. 역사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있고, 평소 철문은 자물쇠로 잠겨있다.

한가롭다. 역 너머에는 소리 없이 냇물이 흐른다. 길게 자란 풀숲 사이, 사람들이 부슬비로 살짝 불어난 냇가에서 바지를 걷는다. 남자는 낚시대를 들고 있다. 

두계천이다. 영화 클래식(감독 곽재영, 2003)의 첫 장면. 요한 파헬벨(Johan Pachelbe)의 캐논 변주곡이 흐르자 아침 안개 자욱한 두계천이 스크린을 채운다. 흔들리는 버드나무와 얼기설기 엮인 나무다리가 차례대로 스쳐 지나간다.

장면이 바뀌면, 여주인공 손예진(지혜 역)이 등장한다. 책 정리를 하는 와중에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편지함. 첫사랑의 흔적이다. 지혜는 바람이 불어와 엉망이 된 방안에서 한 통의 편지를 집어 든다. 유치한 편지를 읽다말고 내뱉은 혼잣말, “좋아,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두계천은 영화에서 처음과 끝을 잇는 중요한 배경이다. 지혜와 지혜의 엄마 주희의 첫사랑이 시작되거나 남주인공과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장소로 쓰였다. 영화를 관통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선, 그 중심에 두계천이 있다.

여름 장마의 첫 날, 비오는 두계천 풍경.
여름 장마의 첫 날, 비오는 두계천 풍경.

영화 속 명장면으로 꼽히는 반딧불이신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섬으로 놀러간 주희와 그녀의 첫사랑 준하(조승우 역)는 소나기로 인해 잠시 비를 피하게 된다. 발을 헛디딘 주희를 위해 준하는 그녀를 업고, 강가 나무다리를 건넌다. 날은 저물고, 배를 향해가는 둘 사이로 반딧불이가 아른거린다.

준하는 주희에게 반딧불이를 선물한다. 때묻지 않은 준하의 마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영화 속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각자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운명을 맞이한다. 

여러 해가 지나고, 카메라는 다시 현재를 비춘다. 영화 포스터 카피처럼, 우연은 운명으로 이어진다.

현실 속 지혜와 상민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을 가진 지혜와 준하의 자녀다. 둘은 이 사연을 알게 된 후, 다시 두계천 나무다리에서 운명을 확인한다. 

영화의 마지막, 반딧불이는 두 사람, 아니 과거의 주희와 준하까지 네 사람을 감싸 안는다.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두계천 나무다리는 이제 없다.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탓에 이미 수 년 전 큰 비로 떠내려갔다고 한다. 다만 어디쯤이었을까, 가늠할 뿐이다.

이른 장마, 소낙비처럼 훌쩍 스쳐간 첫사랑의 기억. 기왕이면 영화처럼 비가 내리는 날, 혹여 해가 쨍쨍한 날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찾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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