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라디오에서 경상도에 산다는 청취자의 푸념어린 사연이 흘러나왔다. 올해 마늘 농사가 풍작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고 마늘밭을 갈아엎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밭에 들어와 ‘이삭줍기’를 하면서 농민의 아픈 가슴을 더욱 헤집는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일손을 거들어주면 성한 마늘을 품삯으로 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여기 아니어도 주울 곳은 많다”며 “농촌 인심이 아니라”고 비아냥거리며 떠난다는 것이었다. 가끔 이런 일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농민의 입장에서는 얼마의 지원을 받고 애써 지은 마늘밭을 갈아엎는 것보다 다소 가격이 낮더라도 거두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한편 시중가격이 영농비에도 못 미치는 데다 앞으로 수확하고 다듬어 출하에 필요한 품삯과 부대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밭에서 갈아엎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가기천 전 서산시부시장, 수필가

지나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버려지는 것을 주워가는 것이 무슨 잘못이며, 오히려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 사람들이 농작물을 거둬보는 재미도 좀 가져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투덜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타들어 가는 농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처사다. 애지중지 키운 작물이 땅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한숨 쉬며 눈물짓는다는 소식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격 등락폭이 큰 농산물은 풍년이 들면 갈아엎는다는 뉴스를 자주 보아 왔다. 트랙터로 무, 배추밭을 갈아엎고 벼가 터질 듯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논에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수확량이 늘고 줄거나 소비량의 증감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는 것이 농업의 특성이고 한계일 수가 있다. 더구나 올해는 풍작인 데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력난이 심하고 학교급식 등 집단 급식이 줄어 소비감소로 이어지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갈아엎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고 최선의 대안인가에 대하여 아쉬움을 갖는다. 이달 초 강원도는 4kg들이 토마토 1500상자를 온라인에서 판매했는데 단 41초 만에 완판 되었다고 한다. 이에 앞서 3월에는 재고가 넘쳐 골머리 앓던 감자를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화제 속에 팔은 바 있다.

준비한 물량이 삽시간에 동나버려 부랴부랴 추가 물량을 확보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강원도가 다른 자치단체에 앞서 지역농산물 마케팅에 SNS를 활용하여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준 사례는 소비자 가격의 왜곡과 불균형 등 몇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 힘’을 보여 주었다. 소비량을 늘릴 수 있었고 썩혀서 버리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강원도 이벤트처럼 다른 방법 찾아봐야

앞서 마늘의 경우로 돌아간다. 마늘은 곡식과는 달리 소비량에 탄력성이 큰 작목이다. 관계당국과 농민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소비량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풋마늘 때부터 장아찌용으로 많이 팔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홍보를 확대하면 얼마쯤 증가시키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마늘은 조미료로 뿐 아니라 세계 10대 건강장수식품의 하나로 알려진 만큼 어떻게 소비자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가격이 적정하다면 소비량을 늘릴 수 있다.

풍작으로 산지가격이 폭락했다고 해도 소비자는 현실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평소보다 한, 두 접 더 사야겠다는 욕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강원도는 깜짝 이벤트와 같은 탁월한 마케팅전략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고, 골치 아픈 재고처리 문제를 가볍게 해결한 발상이 돋보인다.

우리나라는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돼지열병이 발생하면 일정한 구역 안의 닭이나 소, 돼지를 ‘예방적 살 처분’이라는 명목으로 감염되지 않은 가축조차 땅에 묻고 있다. 농산물 생산량과 가격, 가축 전염병을 이유로 땅에 묻어버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안이 없는지 의문이 든다. 땅은 생명을 키워내는 곳이지 살아있는 것을 내버리는 곳은 아니다. 파묻는 것은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소비를 늘리고 가공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본격적으로 마늘과 감자를 출하하는 시기이다. 관계 기관과 농협에서는 가격, 소비자 동향 등을 면밀히 파악하여 파격적인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생산량 통계도 면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얼마의 가격차를 보전 받았다고 하여 자식 같은 농작물을 다시 땅속으로 묻는 광경을 아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농심을 어루만져 주었으면 한다. 소비자의 관심을 이끌고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 판촉홍보행사, 직거래장터 말고도 강원도처럼 운송비 일부를 지원하는 판매 이벤트라도 벌였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어릴 적 밥알 하나라도 흘리면 안 된다는 타이름을 듣고 자랐다. 멀쩡한 농작물을 파 엎는 것,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가축을 땅에 묻는 것은 결코 정답이 아니다. 지원이나 보상으로 멍들어 가는 농심을 달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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