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지난주 금요일엔 아침부터 기분이 참 언짢았다. 집 근처 네거리에서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하는 모범운전자에게 사진을 찍혔기 때문이다. 아파트 정문에서 나와 우회전하여 70m쯤 가면 왕복 6차로와 만난다. 여기에서 200m 쯤 가면 대전에서 가장 심한 교통 혼잡지역으로 알려진 네거리에 다다르는데, 여기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공주방면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 노선은 출근시간이면 차가 아파트 정문에서 나올 수도 없을 만큼 밀린다. 겨우 나왔다고 하더라도 우회전하여 편도 3차로 도로로 들어가 여기에서 1차로에 까지 진입하여 왕복 10차로를 마주하는 네거리까지 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먼저 아파트 앞 편도 2차로 도로부터 좌회전하려는 차, 직진하려는 차와 우회전하려는 차가 엉클어지기 때문이다.

가기천 전 서산시부시장, 수필가

아침에 정문을 나와 2차로에 들어서서 언제나처럼 우회전 방향지시등을 켜고 진행하는데, 네거리에서는 모범운전자 조끼를 입은 봉사자가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분은 내 앞에 가는 몇 대의 차에게 1차로로 우회전하라는 신호를 했다. 

‘오늘은 웬일로 저기(1차로)로 가라고 하네.’ 중얼거리며 따라가는데 우회전 방향지시등을 켠 나에게는 직진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직진하면 안 되기에 손을 들어 꾸벅 인사하고 우회전하겠다고 손짓을 하며 오른 쪽으로 핸들을 꺾자 그 모범운전자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찍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운치가 않았다. 얼마나 큰 잘못을 했으면 그 시각 혼잡한 도로에서 그래야만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꼭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 차가 수신호를 받고 우회전하고 있으니 나에게도 같은 신호를 해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앞차를 따라가도 될 것이라는 판단은 나의 이기심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른 시간에 나와서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했다. 사고 예방과 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해서 일 것이다. 더구나 그때는 ‘직좌’ 동시신호를 받은 상황이기에 살펴서 가면 다른 차의 운행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초래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 네거리는 교통이 매우 혼잡하고 자칫하면 차량이 뒤엉키는 곳이다. 꼬리 물기를 막으려고 진입하려는 차에게 정지신호를 보내도 막무가내로 진행을 멈추지 않는 차도 있다. 어느 때는 대형 버스가 사거리 한복판에 버티고 서있는 바람에 네 방향의 모든 차들이 신호를 받고도 오도 가도 못하는 때도 있다. 봉사활동을 하는 모범운전사는 같은 운전을 하는 입장이지만 신호를 따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밉고 혼내주고 싶은 심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 그 시간쯤에 3차로로 진입하여 2차로로, 다시 1차로로 차로를 변경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만일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길게 연결 된 열차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행하는 차들의 양보를 얻어내야 하는지, 끼어들기가 쉽지 않은데다 차량 흐름을 끊어 놓게 되는지를 고려한다면 현장상황에 대응하는 합리적인 판단과 탄력적인 운영이 필요하지 않을까? 

교통신호등 만으로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모범운전자들이 나와 수고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항상 교통법규를 지키려 노력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놓지 않고 있는데, 이른 아침에 가족들이 타고 가는 차를 사진까지 찍어야 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매연과 소음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봉사활동을 하는 그분들을 마주치면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는데, 그리고 그분들로부터 “감사합니다”라는 응답에는 마음이 흐뭇했는데, 그런 상황을 당한 오늘은 그렇지가 못하다. 무슨 위반통지서가 올는지, 아무래도 한동안은 개운치가 않을 것 같다. 아니 두고두고 그럴 듯싶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