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대전교육청 기자실 갈등을 바라보며

대전시교육청 기자실.
대전시교육청 기자실.

최근 대전시교육청 출입기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기자실 좌석이 부족하다보니 일부 기자들이 고정석을 요구하면서 불거진 일이다. 옆 자리에서 방귀만 뀌어도 금방 소문이 나는 지역사회다보니, 며칠씩 입길에 오르내린 사건이다. 

내막을 들어보니, 대전·충남 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이 ‘관행’ 등을 이유로 절반 이상의 자리를 자신들이 고정적으로 사용하겠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출입처 중심의 기형적 한국 언론풍토에서 출입기관의 ‘기자실 좌석’이 권위와 기득권을 상징하던 시대가 있었으니,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웬 자리다툼이냐’고 의구심을 보낼 만하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년 전에 외쳤던 ‘언론개혁’의 한 형태가 바로 ‘기자실 개혁’이었다. 기자실이라는 공간이 관(官)과 언(言)이 서로 유착하고 거래를 일삼는 공간으로 전락하다보니 관청의 기자실을 아예 없애버리고,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개편하자는 것이 기본적인 구상이었다. 

최소한의 공신력을 갖춘 언론사 소속 기자라면, 누구나 브리핑룸에서 공개적으로 관(官)에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공정한 관언(官言)관계를 만드는 것을 ‘언론개혁의 한 방편’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 문턱부터 낮췄다. 당시 풋내기 기자였던 필자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취재할 수 있었던 것도, 노 전 대통령의 ‘개혁적 언론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얼마나 변화했을까. 내 얼굴은 물론, 동료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아 감히 이런 고백을 하기 어렵지만, 유독 언론만 개혁의 길에서 가장 더디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초년 기자에서 부장급 기자가 될 때까지 소위 ‘비주류’ 언론에서 중년이 다 되었지만, 내 마음속의 ‘언론개혁’은 요원하기만 하다. 

동료들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 또한 때로는 불합리에 눈을 감았고, 내 편의를 위해 ‘내로남불’에 빠져들었던 것이 한 두 번은 아닐 것이다. 세금으로 술·밥을 먹으며 ‘취재와 소통’이라는 변명을 하거나, 기사를 매개로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거나, 기사와 광고를 맞바꾸는 행태에 맞서지 않고 눈을 감은 일도 없지는 않았다. 

때문에 지금 대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자들 사이 갈등에 훈수도 조언도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기자의 권리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본다. 기자가 행정관청의 특정한 공간을 전유물처럼 사용할 권리가 있을까? 애초부터 그런 권리란 존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어떤 법을 뒤적여 봐도 그런 권리를 규정한 대목은 없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언론선진국의 경우, 아예 ‘출입처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권리는 권원(權原)으로부터 출발한다. 권원은 어떠한 행위를 법률적으로 정당화하는 근거다. 행정관청이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특정 공간을 브리핑룸으로 꾸며 언론을 만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언론 스스로 특정 공간을 전유물처럼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권원 없는 권리 주장에 불과할 따름이다.

오래 전 워싱턴에서 만났던 미국의 언론인들이 한국의 출입처 관행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언론브리핑 시 유력지나 고참 기자에게 질문권을 우선 제공하는 암묵적 관행은 있을지언정, 공공기관에 버젓이 언론사명을 표시한 기자전용 좌석(부스)을 두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취재원인 행정관청의 주요 인사를 자신들이 회비를 납부해 운영하는 기자클럽에 초청하거나, 일반 민원인처럼 사전 약속 뒤 행정관청을 방문해 취재하는 것이 보편화 돼 있다고 한다. 취재를 위해 기자에게 필요한 권리는 헌법 가치인 ‘국민의 알 권리’일 뿐, 그 어떤 특권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때문에 법률적 권원의 문제로 보나 글로벌스탠더드로 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기자실 폐지와 개방형 브리핑룸 신설’로 가는 방향이 옳다. 언론 역시 관급 판박이 기사만 양산하는 기존 출입처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최소한의 언론개혁인 ‘기자실 개혁’은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부분 이뤄지기도 했지만, 아직 요지부동인 대목도 많다. 김영란법 시행과 맞물려 특정 기자들에게만 제공됐던 기자실 좌석과 식사 등 일방적 편의제공도 많이 사라졌다.  

이번 대전교육청 기자실 해프닝을 그저 술자리 뒷담화로 끝내지 않길 바란다. ‘다른 생각’이 있다면 공개적인 토론을 하고 일정한 합의까지 이뤄내길 제안한다. 권원 없는 권리 주장을 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가 불필요한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합의만 할 수 있어도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낼 수 있다.  

공간에 대한 관리책임이 있는 행정관청도 슬그머니 뒤로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관청이 분명한 원칙제시 없이 그저 불편하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어도 원칙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해프닝을 거창한 ‘화두’로 뻥튀기 하려는 의도는 없다. 나와 우리, 지역의 언론풍토를 한 번쯤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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