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세종형 도시재생, 제대로 가고 있나 ②
바람 잘 날 없는 조치원 상리 뉴딜사업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도시 패러다임은 개발에서 ‘재생’으로 전환됐다. 도시 방향성은 서울시를 시작으로 소유자 위주에서 거주자 중심으로, 철거 중심에서 회복 중심으로 변모해왔다.

11년 간 정권이 두 번 바뀌었다. 그동안 도시재생은 문화재생, 뉴딜사업으로 확장됐다. 재개발 대신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를 회복하고자 하는 지금,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용산의 외침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주민과 행정, 전문가는 도시재생을 이끄는 3주체다. 행정이 편의주의, 성과주의에 매몰될수록 재생은 본질에서 벗어나기 쉽다. 전문가들의 편협함은 공장식 도시재생 성과를 찍어내고, 부동산, 생계와 연관된 주민들의 욕망은 이해관계에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출범과 함께 대규모 도시개발이 지나간 자리. 세종시 원도심에 문화·도시재생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고 있다. 11년 전 용산의 그들이 묻는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까?” <편집자 주>

세종시 조치원 상리에 위치한 청자장 여관 건물. 35년 된 이 건물은 정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에 선정돼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사진=세종시)
세종시 조치원 상리에 위치한 청자장 여관 건물. 35년 된 이 건물은 정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에 선정돼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사진=세종시)

세종시 도시재생사업이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드웨어 구축이 우선되다보니 콘텐츠와 사람이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10일 세종시와 세종시의회에 따르면, 올해 조치원읍 상리 청자장 도시재생 뉴딜 사업 계획이 재차 미뤄졌다.

조치원읍 상리 지역은 지난 2018년 9월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된 곳이다. ‘주민과 기업이 함께 만드는 에너지 자립마을’을 목표로 국비 100억 원, 시비 100억 원이 투입된다.

이번 뉴딜 사업 계획에 포함된 청자장은 1985년에 지어진 여관 겸 목욕탕 건물이다. 시는 지난해 10월 32억 원을 들여 부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리모델링까지 총 6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사업은 올해 3월 착공해 연말 완공할 계획이었으나 미뤄졌다. 용도가 수차례 바뀌면서 최근에야 콘텐츠가 잠정 확정됐기 때문.

시가 확정적인 중·단기 계획 없이 시비가 매칭되는 대규모 뉴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초기 사업 구상 단계에 참여했던 시민 A 씨는 “상리 뉴딜사업은 당초 계획이 계속 바뀌고, 주민과의 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방향이 여러 차례 달라졌다”며 “오래된 목욕탕 건물인 청자장을 핵심 콘셉트로 내세워 사업을 추진했으나 결과를 보면 결국 특색 없는 사업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청자장은 기존 숙박시설 용도를 살려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라며 “이달 중 전문경영인을 공모할 예정이다. 조성해 놓고 목적을 살리지 못하는 사례가 되지 않도록 운영 콘셉트와 프로그램을 견고하게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등급 D 노후 건물 매입, 목적도 오락가락

지난 2018년 국토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에 선정된 조치원 상리 사업 계획안. (자료=세종시)
지난 2018년 국토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에 선정된 조치원 상리 사업 계획안. (자료=세종시)

청자장 리모델링 뉴딜 사업 예산은 지난해 산업건설위원회 소관 심사에서 한 차례 삭감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해당 예산은 이후 예산결산위원회 회의를 거쳐 다시 반영됐다.

다만 ▲지어진지 35년 된 노후 건물이라는 점 ▲안전진단(C등급) 결과 장기적으로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점 ▲소유주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건물 매입을 요청했다는 점 등이 확인되면서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아왔다.

청자장 사업 방향도 당초 생활에너지 박물관을 포함한 청년 예술인 창작·활동 공간, e스포츠 체험 공간, AR·VR 체험 공간 등을 거쳐 최근 복합문화공간과 게스트하우스 용도로 바뀌었다.

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사업이 추진되는 동안 지역 내 창업 관련 공간이 다수 생기다보니 현실적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시 외부 방문객과 인근 고대와 홍대 학생들이 학기 중 단기 체류하는 게스트하우스형 숙박시설이 현재로서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밝혔다.

반면, 일각에서는 특색도, 계획도 없는 뉴딜사업의 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모 선정에 따른 국·시비 예산 투입이 무조건적으로 지역 발전에 유의미할 것이라는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다.

도시재생 사업 논의에 참여했던 시민 A 씨는 “세종시 뉴딜 사업의 문제점은 신중한 고민 없이 하드웨어를 갖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도시재생 사업의 핵심은 그 안에 사람이 모이고, 지역 정체성을 담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달렸다. 막연하게 예산을 투입하는 일이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국 지속성은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사업이 방향성을 잃는 동안 땅이나 건물을 가진 소유주만 단기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일이 생길 수 있다”며 “순수한 주민 공동체나 획기적인 젊은 조직의 뒷받침이 없다면 사업 목적 달성도 어렵다. 시가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계속 공모에 응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도, 결과는 괴로울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발이 지나간 자리에, 도시재생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78번째로 꼽힌다. 5년간 전국 500곳을 선정해 50조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최근 사업 성과가 더디자 국토부는 채찍을 들고 나왔다. 사업이 진행 중인 전국 지자체의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해 성과가 난 지자체엔 인센티브를, 추진이 늦어지는 지역엔 패널티를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

시 도시재생과도 비상이 걸렸다. 기존 도시재생 사업에 더해 국토부 뉴딜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업무 과중에 시달리고 있다. 악화된 시 재정 상황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지속적인 시비 투입이 어렵다보니 사업 자생력을 갖추는 데 부담이 따른다. 

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사업이 연차별로 추진되다보니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새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는 일은 바로 성과가 나타나지만 도시재생의 경우는 다르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결국 사람과 조직이 정비돼야 성과가 나오기 때문에 늘 어렵다”고 설명했다.

세종시의 경우 뉴딜사업에 따른 기대 심리가 순수한 ‘도시재생’ 보다는 신·구도심 간 ‘균형발전’ 욕구와 연관돼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뉴딜 사업 논의에 참여했던 시민 A 씨는 “세종시의 경우 도시재생 이전 이미 신도시 개발이 진행됐고, 뉴딜사업에 따른 심리가 구도심 소외현상, 균형발전 욕구와도 연결돼있다”며 “사업 타당성과 별개로 한 지역에서 사업이 진행되면 다른 지역도 잇따라 요구가 나온다. 뉴딜사업에 선정되면 땅값이 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도 있다. 시가 국비 지원이라는 달콤한 사탕이 아닌 현실적으로 사업의 적합성과 타당성을 고려해 공모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치원 상리 뉴딜사업은 향후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전문가 집단과 상리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이 합심해 사업을 이끌어 나갈 계획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