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입장 극한대립…합리적 의견도 막말, 고성에 묻혀

8일 충남학생인권조례안 공청회가 열린 천안교육지원청 대회의실 모습.  

충남학생인권조례안(이하 조례안)에 공청회가 고성과 막말로 얼룩졌다. 합리적인 의견들도 나왔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과격한 발언과 행동들로 묻혀 버렸다.

8일 충남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천안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학부모, 교육관계자 및 도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충청남도 학생인권 조례’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오인철 위원장이 좌장으로 나선 이날 공청회는 김영수 의원(서산2·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 한 ‘충청남도 학생인권 조례안’과 관련 김 의원의 주제발표 이후 김문광 충남도교육청 장학사, 이준권 충남교총 대변인, 김선 전교조 충남지부 학생국장, 이재범 천안시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장, 양기숙 아산 배방초 학부모, 김현숙 천안청수고 학부모 등이 토론에 나섰다. 

조례안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인권을 존중받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을 때 성숙한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고 옹호했다.

먼저 김영수 의원은 “학생들의 평등, 참여, 자율, 교육복지 등 4가지 권리를 실천하기 위해 조례안을 제정했다. 실천방안으로 인권위원회·인권옹호관제도·인권센터 등을 포함했다”며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는 교육을 받아야 상대를 충분히 배려할 수 있다고 생각해 연구모임 활동을 통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그는 “종교계, 학부모, 교사 등 크게 세 분류의 반대의견이 있다. 종교계는 동성애 조장을 우려했지만 조례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학부모단체는 휴대폰 제재 강도를 완화했을 때 학습능력이 저하된다고 걱정했지만 학교별로 교장이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학칙을 정할 수 있다. 교사들이 우려하는 '교권 훼손'도 교권을 보장하는 조례를 별도로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김 선 학생국장은 “김누리 교수는 한국교육 100년이 산업인력교육, 입시경쟁 등 반교육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젠 존엄성을 키우도록 바뀌어야 한다. 여전히 한국은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라면서 “교총이 발표한 2019년 설문에서 교권침해 요인 1위가 학부모(46.3%), 2위가 동료 교직원(18.3%), 3위가 학생(17%)이었다. 학생 인권이 교권 침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조례안을 지지했다.

의견수렴 부족, '교권vs학생인권' 대립구도 지적

선착순으로 배정된 방청석에는 조례안 반대 측이 다수를 차지했다.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반대 측 방청객들.

하지만 반대파의 반론도 강했다. 이준권 대변인은 “학생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교육적인 목적 안에서 제한돼야 한다. 그러나 조례안은 이를 무시한 채 모두 허용하고 있다. 교육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특히 인권옹호관은 막강한 조사권을 행사하게 된다. 교육전문가도 아닌 시민사회운동가로 지정하게 돼있고 4~5급 상당 대우에 조사관 1명도 근무하게 돼있다. ‘옥상옥’일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교육공간이 특정 정치세력에 악용될까 우려스렵다. 성적지향과 성정체성 등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가치를 담고 있다. 조례안의 역기능이 합리적으로 해결된다면 학생의 인권을 반대하진 않는다”면서 “현장에서는 ‘중학교에 일주일만 근무하면 비현실성을 느낄 것’이라는 조소가 나온다. 학생들의 인권 보장은 '조례'보다 '헌장' 형태가 바람직하다. 구성원의 자율적인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부모 패널들 역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재범 위원장은 “의견수렴 기간이 너무 짧았다. 충분히 논의됐어야 했다. 학생의 권리만 있고 책임과 의무는 없는 조례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으며, 양지숙 학부모는 “미국 뉴욕은 학생 ‘인권’이 아니라 ‘권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 안에는 24가지의 의무도 명시해 있으며, 권리에 대한 모든 내용이 교육적 목적에 따라 제한되도록 돼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숙 학부모도 “조례안은 학생 인권과 교권을 대립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학생의 자유만 강조한다면 또래간의 문제로 피해를 보는 학생들의 인권은 보장받기 어렵다”며 “얼마 전 청수고에서 두발자유과 복장자율화를 용인했는데, 학생회에서 의견을 모아 교복 유지 의견을 내놓았다. 이미 교육현장에서는 소통해서 만족하는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별로 학칙이 다르게 운영되는 건 지역적 특성, 학풍 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조례 내용을 일률되게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보다 항목별로 취지만 담는 선에서 만들고 나머지는 학생과 학부모, 학교가 소통해서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반대측 방청석 대거 점유…통제 불능에 ‘파행’

일부 방청객들의 고성과 막말로 회의는 수시로 중단돼야 했다.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상황도 연출됐다.

이날 공청회는 시작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보수 기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 측은 행사 전부터 천안교육지원청 앞에서 집회신고를 갖고 반대여론전을 펼쳤다. 

방청석은 선착순으로 배정됐다. 인권단체 등으로 구성된 찬성측에 비해 반대측이 다수였다. 그러다 보니 조례안 찬성 내용이 나올 때면 일부 반대측 방청객들이 야유를 보냈고 회의장은 격앙됐다. 특히, 후반부 자유토론에는 거친 막말이 오가며 혼란이 가중됐고 좌장인 오인철 위원장의 권고는 물론 집행부의 통제도 불능이 되기 일쑤였다. 몸싸움 직전의 위태로운 상황도 수시로 연출됐다. 

자신이 학교밖 청소년이었다고 소개한 한 방청객은 반대측을 겨냥해 “오늘 공청회는 무질서와 불통만 고집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였다. 반성해야 한다. 청소년의 인권을 위한 자리에 독선과 차별을 폭력적으로 외쳤다”고 비판한 뒤, 찬성측에게도 “공청회에 당사자인 청소년과 학생들의 참여가 부족하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또 다른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 행사 참석자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쉬운 자리였다. 아마 학생들까지 있었다면 어른으로서 너무 부끄러웠을 것”이라며 “정작 중요한 얘기도 산만한 분위기와 볼썽사나운 광경에 묻혀 버린 것 같다. 이런 식이라면 공청회는 하나마나 한 것 아니겠냐”고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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