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세종형 도시재생, 제대로 가고 있나 ⓛ
“협력·상생 헛구호, 성과주의식 문화재생 그만”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도시 패러다임은 개발에서 ‘재생’으로 전환됐다. 도시 방향성은 서울시를 시작으로 소유자 위주에서 거주자 중심으로, 철거 중심에서 회복 중심으로 변모해왔다.

11년 간 정권이 두 번 바뀌었다. 그동안 도시재생은 문화재생, 뉴딜사업으로 확장됐다. 재개발 대신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를 회복하고자 하는 지금,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용산의 외침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주민과 행정, 전문가는 도시재생을 이끄는 3주체다. 행정이 편의주의, 성과주의에 매몰될수록 재생은 본질에서 벗어나기 쉽다. 전문가들의 편협함은 공장식 도시재생 성과를 찍어내고, 부동산, 생계와 연관된 주민들의 욕망은 이해관계에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출범과 함께 대규모 도시개발이 지나간 자리. 세종시 원도심에 문화·도시재생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고 있다. 11년 전 용산의 그들이 묻는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까?” <편집자 주>

구 한림제지 공장 내부.
구 한림제지 공장 내부 모습. 세종시는 이곳 폐산업시설을 도시재생 대상지로 선정하고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세종시 지역 청년층이 조치원 도시재생 사업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시가 민간 주도형, 거버넌스 협치 의미를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춘희 시장은 2014년 10월 시정 2기 핵심 과제로 '청춘조치원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중장기 도시재생사업이 본격화된 건 2016년부터다.

세종형 도시재생 사업은 지난해 4월과 9월 각각 도시재생산업박람회 대통령상,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종시 도시재생 사업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폐산업시설인 한림제지 문화재생사업이 그 발단. 지난 2년 간 도시재생 협의체에 참여한 청년층이 사업에서 배제되면서 주민 참여 거버넌스 운영상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최근 SNS와 세종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잇따라 문제가 지적됐다.

사업에 참여했던 지역 청년 A 씨는 “세종시 문화재생 거버넌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며 “행정은 한림제지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라는 협의 기구를 별도로 만들어 기존 참여 주체들을 배제시켰다. 시민 중심, 거버넌스 중심이라는 시의 도시재생 구호는 날아가 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청년 B 씨도 “행정은 결과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배제하고, 청년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있다”며 “중간 지원 조직 역할을 수행한 사단법인은 하나의 용역사로 취급받고, 필요할 때는 가져다 써 놓고 결국에는 팽 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거버넌스 헛구호? "행정 입맛따라 협의체 구성" 

한림제지 건물은 조치원읍 남리에 위치한 폐공장시설이다. 일제강점기 시기 1927년 산일공장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져 광복 후 삼충편물공장으로 쓰였다. 이후 한국전쟁 때는 조치원여고 임시 교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2003년까지는 한림제지 공장으로 활용됐다. 그 뒤 폐공장으로 방치되다 시가 2017년 11개 공장 건물과 부지를 사들였다. 이후 문체부 폐산업시설 유휴부지활용 문화공간재생사업에 선정돼 도시재생 대상지가 됐다.

부지와 건축물 매입에 74억 원, 안전진단 및 철거 등 정비 사업에 5억 원이 들었다. 리모델링 설계 용역을 진행 중이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시는 2018년부터 지역 거버넌스 주도의 문화재생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 한림제지에서 시범사업이 두 차례 진행됐고, 조치원 원탁회의는 매주 회의를 통해 문화재생에 대한 논의를 이어왔다.

돌연 시는 최근 별도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의사결정을 위한 실질적 협의체가 필요했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기존 협의체에서는 원탁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배제하고, 행정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기 위해 또다른 협의 기구를 만들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원탁회의 참여자 청년 B 씨는 “기존 협의체가 아닌 별도의 추진위원회가 생긴다는 이야기도 미리 전해듣지 못했고,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시의 해명도 거짓”이라며 “거버넌스 조직에서 협의된 결과를 시에서 수용할 수 없으니 물러나달란 이야기다. 추진위원회 구성도 기준이나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원탁회의에서 나온 계획안이 시 재정 등 여건 상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며 “일부 청년들의 의견대로 흘러가면서 나머지 주민들과 멀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 추진위원회는 바람직한 방향을 다시 잡아보자는 의도에서 구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원탁회의에서 나온 결과물이 현실성이 없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다만, 절충하려는 노력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회피했다. 

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재정적 효율성과 공공성, 사업 타당성이 분명했으면 수용했을 것”이라며 “원한다면 언제든지 협의체에 들어와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새 추진위원회에서는 한림제지 리모델링 방안으로 민간 투자 유치를 통한 북카페, 청년 예술작가 입주 공간 조성 등을 논의하고 있다.

도시재생과 욕망

조치원 문화재생 협의체인 원탁회의 모습.
조치원 문화재생 협의체인 원탁회의 모습.

이번 사태를 두고 도시재생 사업의 당초 목적이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도시 개발로 소외된 원주민들과 새롭게 원도심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이 협력해 더 나은 동네로 만들겠다는 순수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원탁 참여 시민 C 씨는 “도시재생이라는 원래 목적과 달리 행정은 성과 내기, 주민들은 상권이나 부동산 등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참여하고 있다”며 “도시재생은 성과가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업이다. 시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대가 없이 노력해 온 시민들을 이제 와서 배제시키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도시재생 사업 추진 방향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했다. 일자리와 창업, 문화 진흥, 산업과 연결하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원탁회의 참여자 청년 B 씨는 “지역 맞춤형 일자리 사업, 문화기반 청년 활동가 사업, 상생형 문화거리 사업 등은 결국 도시재생 사업 토대가 되는 일들”이라며 “시는 도시재생 대상지가 생산기지로서 역할을 하고, 이것이 신도시로 확장되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시재생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지역 기득권 단체들이 큰 목소리를 내고, 행정이 지역 유지 단체와 유착하며 사사로운 이익들이 개입하는 순간, 도시재생은 본 목적을 잃을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카페를 만들고 민간 자본을 유치하는 방향이 과연 올바른 도시재생인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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