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IN충청-⓷] 대덕구 오정동 한남대학교 선교사촌
영화 덕혜옹주, 그해 여름, 살인자의 기억법 등 촬영지 명소

한남대 선교사촌.

대전·세종·충남 지역 곳곳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촬영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 명대사와 인상깊은 장면들을 회상하며 지역 관광 명소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방문객들의 오감만족은 물론 추억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촬영지 명소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평안한 마음으로 즐기시고 발자국 외에는 어떤 것도 남기지 마세요."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오정동 선교사촌 주변을 걷다 보면 새들이 지저귀는 맑은 울음소리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서양식 붉은색 벽돌 위에 한식 기와 지붕을 덮은 근대 건축물이 둘레길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도 풍긴다.

'오정동 선교사촌'으로 잘 알려진 이 곳은 한남대학교 경상대 옆 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흙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순수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 한 채와 동·서양이 어루러진 건물 몇 채가 눈에 들어온다. 

1950년대 조성된 선교사촌은 한남대 초대 학장인 인돈(William A. Linton)의 부인이 설계하고 한국인 목수가 시공했다. 1990년대 초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나자 존 서머빌(한국명 서의필)이 1994년 사택 일부에 인돈학술원을 세워 유물을 보관했다.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그림과 서적, 도자기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인돈학술원. [제공=한남대]

한남대 선교사촌은 한때 소멸 위기를 겪었다. 일부 토지를 매입한 건설회사가 9층 규모 원룸 아파트를 지으려 했지만 1999년 지역 주민들이 '땅 1평 사기 운동'을 펼치면서 자리를 지키게 됐다. 세월을 지켜낸 인돈학술원은 같은해 '좋은 건축물 40선'에 꼽혔고, 북측 3개동은 2001년 대전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됐다. 조용히 자리 잡은 건물 주변에는 새매·소쩍새·솔부엉이 등 50여 종의 조류가 살고 있어 보존가치도 높다.

약 70년 세월을 간직한 이 곳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좋다. 가장 최근에는 영화 '정직한 후보'에서 나문희의 밀실로 나왔고, 이병헌·수애 주연 '그해 여름(2006)'과 설경구·김남길 주연 '살인자의 기억법(2017)', 드라마 '마더'에도 등장했다. 

한남대 선교사촌 '덕혜옹주' 촬영 모습. [제공=한남대]

선교사촌은 손예진·박해일 주연 '덕혜옹주'에서 큰 인상을 남겼다. 양장 차림을 한 덕혜옹주가 차에서 내려 어린이들과 만나는 장면을 이 곳에서 찍었다. 덕혜옹주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였던 고종의 고명딸이다. 역사의 경랑 속에 비운의 삶을 살았던 마지막 황녀 '이덕혜'. 그녀의 쓸쓸하고 비극적인 삶이 영화 속에도 애처롭게 녹아있다. 

친일파들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혈안이 돼 있었다. 실존인물 한창수를 그린 극중 '한택수'는 덕혜옹주에게 야외 행사에 입을 의상으로 '기모노'를 보내지만 어린 덕혜옹주에게 점잖게 한 방을 맞는다. "대한제국 황녀인 내게 기모노를 입으라 보낸 것이오?." 덕혜옹주의 인상 깊은 명장면이 바로 이 곳 한남대 선교사촌에서 촬영됐다. 기모노를 거부하고 하얀 양장 차림을 한 덕혜옹주의 모습은 한국과 서양의 조화가 어우러진 선교사촌과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선교사촌 뒤에는 작은 숲길도 이어져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수십년 된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면 지저귀는 새 소리에 절로 사색에 잠긴다. 대학가 인근인지라 주변에 먹거리도 많다. '환영' 그리고 '사랑에 취하다'는 꽃말을 가진 등나무가 어우러진 이 곳. 이번주에는 좋은 사람과 함께 선교사촌 흙길에 발자국을 남겨 보는 게 어떨까.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