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스물 두 번 째 이야기] 뉴 노멀 시대 ‘호민’을 기대하며

허균은 <호민론>에서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구분했다. 항민은 순종하며 부림을 당하는 백성, 원민은 윗사람을 원망만 하는 이를 말한다. 이에 비해 호민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사람을 일컫는다.

호민은 곧 '변혁의 주체'이다. 백성을 조직하고 동원해 사회 변혁을 주도하는 사람도 호민에 해당한다. 허균의 소설 주인공인 '홍길동'이 호민을 형상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 속에 문을 닫는다. 돌아보면 최악이 아니었던 국회가 있었던가. 국민의 대리자라고 모인 집단은 선거 때만 '국민'을 찾았다.

선거 때만 '머슴'이요, '일꾼'이었다. 배지를 달고 나선 상전 노릇을 하며 '주인'을 업신여겼다. 걸핏하면 싸웠고, 툭하면 장외로 나갔다. 일하는 시간보다 세금 축내는 시간이 많았다. 국회는 4년마다 국민을 속였다.

재산 22억원, 55세, 법조인, 남성.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300명의 평균이다. 서민들 평균과는 동떨어진 평균이다. 21대 국회도 '일하는 국회'를 약속했다. 국회의원 배지는 6g에 불과하지만, 작금의 정치‧사회적 환경의 무게는 엄중하다. 전 세계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민생과 경제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간의 삶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살던 날이 그리울 만큼, 세계는 광범위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위기는 늘 많은 것을 바꾼다. 코로나19에 누군가는 수입이 줄었고, 누군가는 일터를 잃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일감이 늘고 재산도 불렸다. <시사저널>은 최근 경영 성적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의뢰해 국내 30대 그룹 오너 일가 297명의 1년여 주식 가치 변동액을 조사했다. 그 결과 19세 미만 미성년자 29명 주식 평가액이 증가했다.

올해 4월 20일 기준 이들 평균 연령은 13.5세. 이 중 4명은 10세 미만 초등생과 유아였다. 1인당 평균 자산은 19억3000만원, 29명 전체 주식 평가액은 560억8000만원에 달했다. 지난해 1월 조사(524억1000만원) 때보다 7%나 많아졌다. 그룹 오너들은 코로나 사태에 후계자들을 중심으로 하락한 주식을 매입했는데, 이게 상승작용을 일으켜 주식 가치가 올랐다.

불평등과 불공정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 양극화를 보다 공고하게 다져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국회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특권과 반칙이 판치는 사회를 반길 국민은 없다. 일 못하는 일꾼에게 또 일을 맡기는 주인도 없다. 일하는 국회는 국회가 선심쓰듯 선언할 약속이 아니다. 국민들이 표로 보낸 '독촉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28일) 여야 원내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나누며 '협치'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대 국회도 협치와 통합을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것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라고 당부했다.

여당은 항민이 되지 않으려면 청와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소리다. 야당은 원민 소리를 듣지 않르려면 발목 잡기와 몽니 부리기를 지양하고 대안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마시라. 국민들은 '정직한 후보'를 뽑았지, '양치기 소년'을 뽑은 게 아니다.

허균은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대의 사명을 인식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을 '호민'이라고 칭했다. 21대 국회가 '뉴 노멀(New Normal)'시대 호민이길 바란다. 새로운 국회의 문이 내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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