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자리욕심이 빚어낸 촌극, 집단 망각의 함정

‘망각의 정치’가 또 다시 ‘합의 정치’를 위협할 것인가. 

대전시의원들이 후반기 원구성 시점이 도래하자, 집단 망각에 빠져 버렸다. 2년 전 자신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한 합의내용에 대해 다수 의원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엉뚱한 자기최면을 걸고 있다.

2년 전, 지방선거에서 시의회 22석 중 21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의원총회를 통해 전반기 김종천, 후반기 권중순 의원이 의장을 맡고 상임위원장 등 전반기에 직을 맡았던 의원들은 후반기에 직을 맡지 않는다는 합의에 이른 바 있다. 1안과 2안을 상정한 뒤 투표를 통해 도출한 합의였다. 

새끼손가락을 걸었든, 문서에 서명을 했든 약속은 약속이다. 당시 의원총회 과정과 결과는 일부 의원들과 당직자들을 통해 비교적 상세하게 외부에 알려졌고 <디트뉴스> 등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합의 과정과 결과를 철통보안에 부쳐 전혀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의원 대표가 언론에 공식브리핑까지 한 사실을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부정하고 발뺌하는 모습은 정치인이기에 앞서 인간적 면모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자리욕심이 빚어낸 촌극이다.  

심지어 정당정치의 본질을 부정하는 의원들도 있다. 이들은 지방의회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정당이 왜 의원 고유권한인 의장선출에 개입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합의된 내용이 있다면 이를 지키라”는 당론과 “당론을 어기면 징계하겠다”는 지침은 ‘부당한 개입’의 전형일 따름이다. 

지방선거 시즌이 다가오면 누구보다 열혈 정당인이 돼 공천장 확보에 열을 올릴 그들이 원구성 시즌만 되면 지방의회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안방 옷장에 정당인의 옷과 지방의원의 옷을 걸어두고, 필요할 때 옷만 갈아입으면 된다는 속 편한 논리다. 

조승래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은 26일 저녁 시의원들과 비공개 간담회에서 ‘원칙론’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시의회 원구성 문제가 주된 화제는 아니었지만, 워낙 외부에서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안이어서 “잡음이 일지 않도록 원만하게 해결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정당정치의 본질에 대한 친절한(?) 교양도 있었다고 하니, 알아들을 의원들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을 것이다. 

지난 7대 의회에서도 ‘망각의 정치’가 ‘합의 정치’를 압도한 바 있다. 그 때는 의원들이 서명까지 해서 합의를 문서로 남겼지만 약속이 부정당했다. 때문에 8대 의회 의원들은 합의서 한 장 없는 후반기 원구성 약속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의원들이 기억해야 할 또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망각의 정치는 손쉬운 선택일 수 있지만, 그 대가는 결코 깃털처럼 가볍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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