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IN충청-①] 충남 아산 공세리 성당…노동착취·종교박해 흔적 불구 ‘힐링 명소’ 
대한민국 대표 ‘아름다운 성당’…‘태극기 휘날리며’ 등 영화·드라마 70여 편 촬영

대전세종충남 지역 곳곳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촬영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 명대사와 인상깊은 장면들을 회상하며 지역 관광 명소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방문객들의 오감만족은 물론 추억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촬영지 명소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성당 모습. 근대 고딕양식의 이국적인 풍경으로 영화, 드라마, CF 촬영 명소로 꼽히고 있다

수백마디의 말 보다 ‘공감의 침묵’에 위안을 얻을 때가 있다. 특히 큰 상처를 견뎌온 존재로부터 시작된 공감은 위로를 구하는 자에게 더 많은 기운을 준다. 5월의 녹음 속에 마주한 공세리 성당(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이 그렇다.

1894년 국내 아홉 번째이자 대전교구 첫 번째로 설립된 공세리 성당(충남도 지정기념물 144호)은 1895년 파리 외방전교회 에밀리오 드비즈(Emilius Devise; 1895~1930, 한국명 성일론)신부가 동네 한가운데 가정집을 성당으로 사용하다 1897년 공세창고가 폐기되자 매입해 건물을 올렸다. 그는 직접 성당을 설계하고 1922년 성당을 완공했다.

아산만과 삽교천이 만나는 공세리 언덕 위에 세워진 성당은 고딕양식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당시의 모습을 1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350년 된 팽나무를 비롯한 국가보호수종 4주를 따라 포진된 느티나무 숲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성당을 막상 눈앞에 마주하면 화려하지도, 거대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묵묵히 한국 천주교의 역사와 아픔을 견뎌온 성스러운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성당 주변에는 묵상하며 걸을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에 이르기까지 14단계의 사건을 조각으로 표현했다. 종교와 무관하게 사색을 즐길 수 있다.

성당 내부 모습. 일반 방문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으며 미사 참례시 입장이 가능하다. [아산시청 홈페이지]

사실 공세리 성당은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공세리는 조선 시대 충청도 일대의 공세미(세금으로 내는 쌀)를 모아 보내던 나루터였다. 이곳에 공세를 보관하던 공세관창(공진창)이 지어졌고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 

성당이 위치한 언덕 주변이 지금은 논·밭이지만 당시엔 바다였다. 1900년 전후 이 일대에는 간척사업이 이뤄졌고 공사에 동원된 주민들은 온 몸이 방치된 상처와 욕창 등으로 성하질 못했다. 이를 본 드비즈 신부는 의약 지식을 활용해 종기 퇴치 고약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그의 한국이름을 따 ‘성일론 고약’으로 불렸다.

이를 성당에서 심부름을 하던 10대 소년이던 이명래 씨가 전수받았고 ‘이명래 고약’이 탄생하게 됐다. 이명래 고약은 사위인 한의사 이광진과 고려대 총장과 신민당 총재를 지낸 유진오 박사의 부인인 막내딸 이용재 씨에게 대물림 됐다고 한다. 이 고약은 30~40년 전만해도 모든 가정의 필수 상비약일 정도로 효과를 인정받았다.

공세리 성지 박물관. 공세리 성당의 역사와 천주교 박해에 대한 유물이 보관돼 있다.

성당에는 한국 천주교 박해의 흔적도 서려있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한 아산만 일대는 내포지역으로 천주교 포교의 발산지이자 신유·기해·병오·병인 등 4대 박해에서 가장 많은 신자들이 순교한 지역이기도 하다.

성당에는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순교 백 주년 기념비’를 비롯해 신유, 병인 박해에 순교한 32명의 순교자를 기리는 ‘32 순교자 현양비’가 세워져 있다.

예전 사제관을 개보수한 성지 박물관에는 이 같은 박해의 역사를 나타내는 약 15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드비즈 신부와 초기 성직자들의 유품, 또 지역 신앙의 상징인 박의서·박원서·박익서 3형제와 그 집안의 순교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한 공세리 성당 모습. [공세리 성당 홈페이지]

하지만 성당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이국적인 분위기로 아픔의 역사를 무색케 한다. 때문에 ‘태극기 휘날리며’, ‘모래시계’, ‘사랑과 야망’, ‘불새’, ‘에덴의 동쪽’, ‘고스트 맘마’, ‘미남이시네요’, ‘아내가 돌아왔다’, ‘청담동 앨리스’, ‘아이리스2’ 등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70여 편이 촬영됐으며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05년에는 한국관광공사 주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성당 주변에는 먹거리도 풍성하다. 인주 지역 명물인 자연산 장어를 맛볼 수 있는 장어촌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토속음식점도 인근에 포진돼 있다.

역설적이게도 역사의 상처를 간직한 이 곳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치유를 구하고 있다.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성당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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