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스물 한 번 째 이야기] 누가 그들에게 투표권을 줬나

충남 천안의 한 고등학교 앞에 고3 등교 개학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충남 천안의 한 고등학교 앞에 고3 등교 개학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코로나19로 닫혔던 교문이 열렸다. 고3 학생들이 지난 20일부터 등교했다. 다음 주는 초‧중학생과 고 1~2년생이 순차 등교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마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시점이다.

우려는 기대를 몇 발 앞서 현실로 왔다. 고3 등교 첫날, 인천 지역 고등학교 절반이 예정된 등교수업을 취소했다. 교육부장관은 이날 인천지역 현장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가 등교 중지 사태가 빚어지자 일정을 취소했다. 수능 모의고사는 온라인으로 대체했다.

경기도 안성과 대구에서도 확진자로 인해 전교생이 귀가하고, 학교는 다시 문을 닫았다. 바야흐로 ‘등교전쟁’이다.

정부의 등교 개학 조처를 두고 시기적 적절성이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정부는 학생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했을 터다.

다만 이건 하나 묻고 싶다. 정부는 등교 개학을 앞두고 학교 현장의 주체인 학생들 의견을 얼마나 들었나. 학생들이 등교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찬반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정부 여당은 4‧15 총선에서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 ‘기-승-전-코로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는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을 개정해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췄다. 그동안 선거연령 인하 찬성론 핵심은 청소년의 정치 참여 확대에 있었다.

만 18세라면 소신 있는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주장과 공감대가 법제화로 이어졌다. 18세 국민 52만여 명 가운데 27%(14만여 명)인 고3이 첫 투표권을 얻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개학이 미뤄지면서 이들은 선거교육 한 번 제대로 못 받고 생애 첫 투표를 했다.

정부나 국회가 만 18세에 투표권을 준 건 앞서 설명했듯 정치적 판단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교육계 일부에선 차기 지방선거 투표 연령을 만 16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놓고 코로나19로 두 달 남짓 닫힌 교문을 여는데 학생들 의견은 제대로 듣지 않았다.

핀란드는 ‘청소년의회’가 발달한 국가다. 2006년 제정된 청소년기본법 8조는 ‘청소년에게 반드시 지역사회의 청소년 단체 및 정책을 다루는 일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핀란드 청소년의회 모델을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광역’ 또는 ‘권역별’ 청소년의회 설치를 대안으로 삼을 만하다. 학생들은 이미 그만한 실력과 역량을 지니고 있다.

충남 당진 고등학교 학생회장 연합회가 전국 고등학생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정부나 국회가 못한 일에 지역 학생회 조직이 주도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약 80%(79.7%)가 고3 순차 등교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들끼리 고3이 실험쥐가 됐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할 정도”라던 한 재학생 이야기가 안쓰럽다.

등교 개학을 연기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답변 요건인 20만명(24만명)을 넘겼다. 그래도 정부는 더 이상 등교 개학 연기는 없다고 한다. 등교 개학을 5번이나 미루는 동안 ‘교실 안 여론’은 ‘교실 밖 정치’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누가 그들에게 투표권을 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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