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종률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종률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 5·18 광주민주항쟁 40주년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김종률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 5·18 광주민주항쟁 40주년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1980년,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던 한 대학생이 광주에 있었다. 수많은 죽음의 현장을 목도한 뒤 청년은 꿈을 접었고, 그가 남긴 한 곡의 노래는 결국 세상을 바꿨다. 

죽음 앞에 미천했던 음악. 하지만 노래는 총이나 칼보다 강했다. 사람들은 목 놓아 노랫말을 읊었고, 노래는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전남대 3학년생, 생생한 5·18 현장 속에 있었던 사람. 김종률(62)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가 5·18 40주년을 앞두고 직원들 앞에서 기타를 들었다.

5·18 광주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 뒷이야기와 참혹한 역사가 예술로 승화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다.

1980년 광주 금남로, 기타 든 청년

1980년 5월 많은 인파가 모인 광주민주항쟁 당시 모습. (사진=5·18민주화운동기록관)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 당시 모습이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사진으로 전시돼있다. 

1980년 5월 21일, 시위대에 섞여 있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 그는 광주 금남로 도청 앞 발포 소식을 들었다. 이튿날 청년은 도청 앞 상무관 체육관을 찾았다. 그를 맞이한 건 줄지어 늘어선 수 십 개의 ‘관’이었다.

“말도 안 되는 풍경이었다. 어떤 관에는 하얀 천이, 어떤 관은 태극기로 덮여 있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어른들이 울고 있고, 아이들은 관을 넘나들며 뛰놀고 있었다. ‘아, 어젯밤 죽은 사람들이구나’. 온 몸이 떨리면서 숨쉬기 어려운 충격에 휩싸였다. 검은 리본을 가슴에 차고 집으로 들어온 그 날, ‘검은 리본 달았지’라는 곡을 만들었다. 참혹한 현실 속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가사를 붙였다.”

그는 이 기간, 시위대 중간 즈음에 섞여있었다. 조용필과 김민기를 잇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는 꿈도 있었다. 그는 79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 은상을 수상했고, 제2회 VOC 대학가요제에서는 곡 ‘소나기’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국내 최고의 레코드사와 전속계약도 맺었다. 그런 그가 돌연 음악 포기 선언을 하게 된다.

“노래한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한 곡의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죽음의 현장 앞에 있다 보니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음악을 그만두고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택했다. 그래도 결국 노래 곁에 있고 싶어 소니뮤직 대표이사로 15년 일했다.”

1982년 4월 중순, 황석영 소설가를 필두로 광주에서 문화 운동을 하던 10여 명의 노래패들이 모였다. 5·18 2주기를 앞두고 있던 때다. 속사포같이 써내려간 6곡, 마지막 한 곡만을 남겨뒀을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졌다. 곡은 2~3시간 만에 완성됐다. 황석영 소설가는 이 곡에 백기완 시인의 시를 노랫말로 붙였다.

“보안 유지를 위해 1박 2일 동안 집에도 못가고 만들었다. 녹음한 노래를 듣고 나서 서로 얼굴만 바라본 채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곧 군대에 입대했고, 83년 첫 휴가를 나왔다. 친구와 최루탄으로 자욱한 신촌 대학가를 걷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너 군대 가고 최고 히트곡이 나왔다’고 말했다. 내가 만든 노래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날 친구와 한껏 취해 경찰서 앞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민중가요 효시, 예술로 승화돼야 하는 이유

임을 위한 행진곡 원곡 악보.
임을 위한 행진곡 원곡 악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 민중가요의 효시로 불린다. 노래는 곧 저항의 상징이자 민주주의 수호의 산증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독재와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열망한 이 노래가 일본과 대만, 라오스,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홍콩 송환법 시위에서도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개인적으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은 2016년 12월 광화문 현장이다. 모든 사람들이 목 놓아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노래는 연기가 돼 아스팔트 위로 번져나갔고, 좌우로 늘어선 큰 빌딩들에 부딪혀 더 큰 전율을 만들었다. 내내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개최된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도 잊지 못할 장면 중 하나다. 참석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이 노래를 제창했다.

“1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함께 노래하며 잡은 손에서 큰 감정을 느꼈다. 대통령의 기념사를 듣고서는 한없이 울었다. 윤상원, 박기순 열사 묘역 앞에서 5·18민주화운동도 문화예술로 승화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김종률 대표이사가 지난 2017년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당일의 기억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 대표가 함께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모습.
김종률 대표이사가 지난 2017년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당일의 기억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 대표가 함께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모습.

역사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문화예술로의 승화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2018년 광주문화재단 재직 당시 ‘임을 위한 행진곡 세계화·대중화 사업’을 추진했다. 뮤지컬 형식의 이 작품은 올해 11월 서울 신촌 홍대아트센터에서 초연한다.

“프랑스대혁명이 세계적인 역사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빅토르 위고를 중심으로 문인, 미술가, 연극인들이 이를 문화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도 정권이 바뀌면 변질되기 쉽다. 단순히 역사의 영역에만 놔둬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참뜻과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이 노래는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이들에 대한 존경을 담은 노래다. 노래의 소재가 된 두 사람의 죽음을 뛰어넘은 사랑에 대한 찬사다. 또 설혹 이 역사가 언젠가 반복될지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오자마자 코로나19가 확산돼 계획된 문화예술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침체된 직원들을 위해 기타를 들었다. 취임과 동시에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라는 것이 부각돼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제 역할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5월 그날이 왔다. 비극의 현대사는 노랫말을 타고 숭고한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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