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0주년 광주MBC 인터뷰, 가장 떠오르는 인물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광주MBC 5·18 민주화운동 특별 프로그램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광주MBC 5·18 민주화운동 특별 프로그램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 시민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을 들으면서 굉장히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5·18 하면 생각나는 인물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17일 방송된 광주MBC 5·18 민주화운동 특별 프로그램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제가 광주 5·18 소식을 들었을 때 민주화의 아주 중요한 길목에 다시 군이 나와서 군사독재를 연장하려고 한다, 그 사실에 굉장히 비통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서울 지역 총학생 회장단 시위 퇴각 결정에 반대했던 경희대 복학생 대표였다. 반(反)유신투쟁에 참가한 혐의로 구속돼 경희대에서 제적됐다 군대를 다녀온 뒤 5년만인 1980년 복학했다. 이후에도 반독재 민주화 요구 시위에 가담했다가 그해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확대되자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서울역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해산한 ‘서울역 대회군’이 광주시민의 희생을 가져왔다고 술회했다.

문 대통령은 서울에서는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사라지고, 광주 시민이 홀로 계엄군에 맞서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학생들이 결정적 시기에 퇴각하면서 광주 시민이 외롭게 계엄군과 맞서야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들 모두가 광주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 부채의식이 그 이후 민주화운동을 더 확산시키고 촉진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당시 광주 5월 영령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또 ‘5·18과 관련해 떠오르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5.18 하면 이야기가 약간 멀어질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노무현 변호사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며 노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80년대 이후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 광주를 알게 될수록 시민들은 그 당시 광주가 외롭게 고립돼 희생당했는데,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던 사실에 큰 부채 의식을 가지게 됐고, 그것이 민주화 운동의 하나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1987년 5월 무렵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광주의 실상을 담은 비디오를 부산 시민들에게 보여줬다. 노 전 대통령은 광주의 진실을 알려 또 다른 민주화 운동인 ‘6월 항쟁’의 불씨를 당기는 데 함께한 ‘동지’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비디오를 처음에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몇 사람들이 돌려보다 나중에는 대학 동아리, 학생회 차원에서도 돌려보고, 6월 항쟁이 일어났던 87년 5월에는 당시의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서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5.18 광주 비디오, 말하자면 관람회를 가졌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 부산 시민들이 줄 서서 기다려서 광주 비디오를 보고, 그때 비로소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그런 분들도 많았다”면서 “그런 것이 부산지역 6월 항쟁의 큰 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일을 함께했던 노무현 변호사를 광주를 확장한 분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인터뷰는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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