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파라오와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 기행⑤

세찬 모래바람이 불어 닥쳤던 기자의 피라미드. 필자는 마치 초겨울처럼 느껴졌다.

필자는 이번 이집트여행으로 세번째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지난 95년 7월 킬리만자로 등정을 위해 케냐와 탄자니아를 돌아보았고, 2011년 6월 스페인과 가까운 모로코를, 그리고 이번에 서남아시아와 인접한 이집트를 여행함으로써 세 번 아프리카를 돌아보았다.

아프리카는 제국주의 시절 유럽의 오랜 식민지로 추락하면서 온갖 학대를 받아왔지만, 인류가 처음 지구상에 살기 시작했던 땅이었고, 이번 이집트 여행에서 보듯이 아주 오래전에 찬란한 문명을 지냈던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번 이집트여행을 통해 아프리카 와서 느끼고 본 몇 가지를 적어보기로 하겠다.

우선 필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더운 지방이며 그래서 벌거벗은 아프리카 원주민을 상상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번 여행기간 동안 한낮의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낮이 많았고, 특히 기자의 피라미드를 방문했을 때는 모래바람이 부는 게 정말 추워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더위를 생각하고 여름옷을 입었는데 한낮인데도 사막지형의 이곳에서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니 초겨울 느낌이 들었다. 이 지역 사람들이 겨울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하고 다니는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여름기온을 느낀 것은 왕가의 계곡에 갔을 때, 그리고 후루가다 해변의 한낮과 버스 안에서 에어컨을 켰을 때 등이었고, 아침, 저녁 그리고 나일강변에서도 날씨는 초가을의 서늘함을 느끼곤 했다. 특히 후루가다 인근의 사막에 갔을 때도 해가 떨어지자 사막의 밤은 금방 서늘하게 다가왔다. 아프리카가 더운 곳이라는 선입견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후루가다  인근에 있는 사막지형. 이곳 사막에 베르베르인들이 휴게시설을 운영하며 살고있다. (왼쪽) 카이로 외곽에 있는 노점상. (오른 쪽)

어떤 나라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사막의 베르베르인

다음으로는 이곳 사람들의 외모다. 이집트는 다양한 종족들이 살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은 니그로이드를 모체로 함족과 셈족의 피가 섞인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 말고도 베르베르인과 수미아인등 여러 인종이 뒤섞여 오늘날 이집트는 1억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누비아인은 얼굴이 검고 얼굴 앞부분이 튀어나온 듯하여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나일강 유역의 남부 쪽에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필자가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베르베르인들이다. 실제로 후루가다 인접 사막에서 베르베르인들의 쉼터를 밤에 가 보았는데 나름대로 사람이 지낼 수 있도록 이런저런 간이시설이 있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사막에서 어떻게 사나 하는데 오아시스 근처에서 생필품과 물 등을 확보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이란 추측을 해 보았다.

이 베르베르(Berber)인들은 북아프리카의 원주민으로 지중해 연안과 사하라 사막에 분포되어 살아가는 사람 들인데 문명교류학의 뛰어난 연구자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 쓴 책(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Ⅰ)에 따르면 주로 산간지대에서 이동이 낮은 유목생활을 하느라 인구수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1000만에서 2000~3000만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이들의 역사도 후기 구석기시대까지 올라가며 이집트는 기원전 945년경 22대왕 신왕조 시대에 일시적으로 베르베르 원주민인 메시웨시의 지배를 받기도 하는 등의 시대도 있었으나, 그 후 로마, 아랍, 오스만, 유럽등의 침략을 받으면서 오늘날 사막 속에서 그들 나름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어느 나라의 법과 간섭도 받지 않고 오직 자신들이 전통적인 언어와 문화등을 지켜나가며 살고 있다고 하니 어느 면에서 이들 베르베르인들이야말로 프랑스 작가 A.생텍쥐페리(1900~1943)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사막의 여우처럼 자유롭게 사는 이방인이라는 부러움도 느꼈다.

무엇보다 지금의 이집트는 이슬람국가였다. 새벽5시, 한낮의 12시, 저녁 6시 경이면 도심의 이슬람사원에서는 아잔소리가 어김없이 울려퍼졌고, 부르카 등을 뒤집어쓴 여인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심지어 후루가다 리조트에 온 휴양객들 중에도 전통 이슬람 복장을 한 여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조금전 베르베르인들에 대한 얘기를 했지만, 이곳에서 만난 이집트인들의 외모는 남녀를 불문하고 체구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모두 잘생겼다는 인상을 받았고, 또 국민소득이 낮아서인지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순박해 보였다. 물론 우리 일행을 안내한 젊은 가이드 박현학씨는 이집트에 와서 여러 번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특히 농촌에서 일하는 농부들이나 아이들의 표정은 대체로 순박하게 비쳐졌다. 

카이로의 출퇴근  때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미완성 주택에서 살아야 세금 적어

귀국하기 전날 카이로의 공항 근처에 묵었던 콩코드 엘-살람 호텔(Concorde EL Salam Hotel Cairo)은 그 규모가 대단히 컸다. 들어오는 입구부터 좁은 골목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여러 명의 경비원이 탐색견과 함께 무장을 한 채 지키고 있었고, 엘리베이터도 숙박하는 방의 키를 갖다 대어야 작동할 만큼 경계태세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이는 지금의 이집트가 테러등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룩소르신전  가운데에 있는 필자.  룩소르는 고대이집트의 테베로 불리웠던  도시로 신전으로 이르는  길에는 스핑크스가 세워졌었다.

아울러 카이로 인근에는 2400만 명의 인구가 밀집돼 있다고 하는데 교통정체가 대단히 심각했다. 그런데 이집트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집이 제대로 완공되지 않은 상태의 건물이나 아파트를 손쉽게 보게 된다. 우리나라 같으면 도심의 거리 주변에 그런 건물이나 집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집트의 도시들은 이런 미완성 형태의 집과 건물을 손쉽게 보게 된다. 왜 그럴까. 이유는 완공된 형태의 주거시설에 살면 세금이 미완성된 상태의 주거지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조금 미완성된 집에서 살면 그만큼 세금이 적어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게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이울러 돈관계도 우리와는 다르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똑같은 돈을 빌려 쓰고도 어떤 경우는 이자까지 붙여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원금까지도 다 주지 않는다고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번 이집트여행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와 다른 현실을 보게 되었고, 그들의 삶과 생각을 조금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여행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아부심벨의 람세스2세신전을 비롯한 룩소르, 에드푸, 왕가의  계곡, 네페르타리무덤, 카르낙신전 등 고대이집트문명을 직접보고 밟아보면서 느낀 경이와 충격이 컸다는 점이었다.

수천년의 오랜 시간 이전에 인간이 이처럼 찬란한 문명을 건설하고 生과 死를 넘나드는 세계를 구축했다는 그들의 신전을 보면서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인간의 영화와 문명의 찬람함에 찬탄을 금치 못하는 한편 21세기 인류는 또 어디로 가곡 있는지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그런 이집트기행이기도 했다.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서 필자는 마치 환상 속에서 네페르타리무덤을 보았다는 착각마저 느껴야 했다. 그만큼 이집트에서 본 풍경은 꿈속에서 본 것같은 잔영이 남는 여행이기도 했다. (연재 끝)

이집트의 곳곳에서 만났던 아이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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