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파라오와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 기행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이집트 유물들 모습. 파라오를 비롯한 서기와 부부모습등 수많은 고대 이집트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조성남 전 중도일보 주필은 지난 2월1일부터 열흘 간 대전예술인들과 함께 이집트를 다녀와 기행문을 보내왔다. 필자는 거대한 암석을 떡 주무르듯 한 고대 이집트인의 솜씨와 지금도 화려함을 자랑하는 찬란한 고대 문명에 놀랐으며, 지금은 너무 초라한 모습에도 또 놀랐다고 한다. 파라오와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 기행문을 5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우한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이 아직은 심하지 않은 2월 1일 필자를 비롯한 대전의 예술인 일행은 터키항공 편으로 이집트 「카이로」로 떠났다.  12시간을 날아서 새벽 5시 20분(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공항에 도착해 다시 카이로공항으로 가는 장장 15시간의 비행시간 끝에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도착했다. 이집트는 우리나라보다 7시간이 늦고, 「카이로」는 또 이스탄불보다 1시간 늦는다고 하는데 카이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11분(현지시간)이었다. 카이로의 기온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이집트인 가이드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조금 서늘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공항을 나와 대기한 버스에 올라 처음 본 「카이로」 시내는 아마 구시가지인 듯했다. 고층건물이 보이지 않았고, 건물색이 우중충했으며 지나는 대로변에 모스크(이슬람사원)가 보였는데 주위의 건물들이 철거된 채 방치된듯한 지역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나중에 가이드 설명을 들으니 이런 장소는 우리네의 불량주택 철거지역 같은 곳으로 주로 노숙인이나 전과자들이 살고 있어 밤에는 신변보장이 어렵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카이로의 인구는 2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출・퇴근 시간의 차량 정체는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카이로가 수도인 이집트는 이미 인구가 1억 명을 넘은 인구 대국이다. 이곳 이집트의 경제 사정을 말해주듯 노후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차량 정체 극심한 수도 카이로 

이번 이집트여행은 첫날 이집트 초기교회인 콥트교회와 이집트박물관을 시작으로 저녁 열차편으로 다음날 아스완(Aswan)으로 이동해 아스완하이댐, 아부심벨(Abu simbel),람세스2세대신전, 필레(philae)신전, 콤옴보(Kom ombo)신전을 보고 다시 나일강을 따라 에드푸로 이동해 에드푸(Edfu)신전을 돌아보았으며 다시 육로로 룩소르로 이동해 왕가의 계곡(King’ Valley)에 있는 람세스1~4세 무덤과 람세스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Nefertari)무덤, 하트셉수트(Hatshepsut, BC1503~1482 재위)장제전(葬祭殿), 카르낙(Karnak)신전, 멤논(Memnon)거상, 룩소르(Luxor)신전 등 이집트 고대 파라오들의 무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유적지를 강행군하며 관람했다. 

이어 홍해 해변에 위치한 후루가다(Hurghada) 해변에서 휴식도 취했고, 밤에 이곳에 인접한 사막에서 밤하늘과 베르베르족의 쉼터를 볼 기회가 있었으며 귀국 전날에 다시 카이로와 이집트의 상징적인 건축물 기자(Giza)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또 피라미드의 원조라고 불리는 사카라(Saqqara)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둘러보는 10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이스탄불 공항을 경유해 2월10일 저녁 6시2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이집트 기행을 마치게 되었다.

이집트에서의 일정은 이곳 시간으로 새벽 3시, 또는 4시에 일어나 목적지에 가야하는 등의 빡빡한 일정이었고, 무엇보다 신전과 파라오 무덤 및 피라미드의 내부로 들어가 그곳을 둘러보는 거리가 상당히 길어서 저녁을 먹고 나면 곯아떨어지기가 일쑤였다. 또 우리나라와는 시차가 7시간이나 나서 이집트시간 오후 5~6시면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밤이어서 필자는 졸음을 이기기도 쉽지 않았다. ‘여행길은 곧 고생길’이라는 말을 이번 이집트여행에서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구)카이로에 있는 콥트교회.이곳에 파라오의 박해를 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했던 모세가 강보에 실려 왔다고 하는 장소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집트 고대 문명과의 만남은 필자에겐 대단한 충격이었고, 무엇보다 이 이집트의 역사가 기원전 5000년까지 올라간다는 점에서 아득한 시간 저편의 상상에 젖어보게 되었다. 짧은 시간 속에서 본 신전과 무덤의 벽화에 그려진 고대 이집트인의 뛰어난 조형 감각과 건축술, 특히 기자의 대형 피라미드와 우뚝 선 스핑크스를 보면서 전율감마저 느꼈다. 동시에 영혼 불멸에 대한 집착이 빚은 이집트 미술은 신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사막에 불어닥친 모래바람은 마치 고대의 파라오가 필자의 여행을 훼방하는 듯한 착각을 느낄 만큼 세차게 불어 닥치고 있었다.

일찍이 독일의 관념철학자 「G.W.F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에서 이집트를 ‘수수께끼의 나라’라고 칭했고, 신화와 역사가 뒤범벅이 된 모순덩어리의 역사를 지닌 나라라고 서술했다. 필자는 이집트의 고대문명지를 돌아보면서 이 나라의 길고도 오랜 역사에 놀랐고, 또 그 긴 역사 속에서 뛰어난 건축술로 신전과 파라오들의 무덤 및 조형미가 뛰어난 상형문자와 조형물을 창작한 데 놀랐으며 나일강의 유려한 물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찬란한 업적을 이룬 인류 4대 문명의 하나가 바로 이집트라는 점에서 주마간산 격이지만, 눈으로 직접 본 이집트의 고대문명은 실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아울러 파라오들이 신(神)이 되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 다시 삶을 이어간다는 이들의 생각은 인간의 삶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기도 했다. 

찬란한 고대 문명과 초라한 현재

그러나 무엇보다 몇 천 년 전의 찬란한 이집트문명을 지닌 지금의 이집트 현실은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유적지 가는 곳마다 아이들과 상인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몰려 들었고, 카이로 시내의 교통체증은 심각하게 느껴졌다. 볼펜을 보고 그것을 달라는 요구를 곳곳에서 받았고, 카이로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역에서 본 승객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6・25 때 기차에 오르려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오기 전 카이로에서 묵었던 호텔의 입구에는 사설 경비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아마 테러에 대비하는 경계태세로 보였다. 주택이 부족해 카이로 외곽에는 가건물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으며 절대빈곤율(가처분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구의 비율)은 2015년 27.8%에서 지난해 32.5%로 악화됐다고 한다.(조선일보, 2020년 2월 13일자 A17면)

잉카제국도, 멕시코의 마야문명도 찬란한 옛 영화를 지녔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이집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는 하나 오늘의 고대유적지를 돌아보는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보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세계의 문명발상지들은 오늘날의 우리 인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를 직접 보기 위해 고생길을 마다않고 찾아가는 것이다. 

지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파라오와 미라」란 주제로 이집트 문명전을 가졌는데 필자는 우연히 이 자료집을 구할 수 있었다. 또 정수일의 「세계문명기행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Ⅰ」(2018, 창비)를 읽으면서 이번 이집트 기행이 주는 문명사적인 가치를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보게 되었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하고 몇 백만 년의 시간을 보내고 신석기시대 이후의 초기 문명을 건설하면서 비로소 인류는 오늘날과 같은 문명 시대를 열 수 있었다면 아마 그 출발 선상에 이집트문명이 있었을 것이다. 주마간산 격이나마 이집트기행문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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