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많은 날을 살아보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하루를 맞이해 본 적은 없다. 주어진 하루가 매일 새로운 것은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축복이다. 자연은 매일 다른 하루를 나름의 방법으로 잘 맞이하고 있다. 매일 보는 하늘도 똑같은 하늘이 없고, 구름의 모양도 늘 다르다. 나무와 꽃, 돌 사이에 작은 풀포기 하나라도 햇빛과 물과 공기를 먹은 만큼 자라고 있다. 단지 우리의 관심밖에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사실 우리의 삶도 자연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자연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즉 우리의 삶이 자연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순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이 또한 매 순간마다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서는 잊어버리게 되면 자연의 흐름을 따라갈 수도 없고, 놓쳐버린 세월만큼 아니면 더 많은 세월만큼 치유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제’의 마음이 아닌 ‘오늘’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집을 통째로 삼켜먹을 태풍이 불어도 뿌리 채 뽑힌 나무가 있고, 태풍에 견뎌낸 나무도 있다. 그들은 나름의 버티기와 견뎌내기에 몇 초마다, 아니 더 짧은 찰나의 순간에도 선택의 여지없이 버터야만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버터내고 견뎌내고, 살아내야 하는 삶일지도 모른다. 매일 주어지는 미션(삶)이 다르기에 어떤 하루는 쉬어가고, 또 어떤 하루는 끼니도 챙기지도 못할 정도로 앞 만 보고가고, 또 어떤 하루는 쉼과 일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가 때론 힘들어 하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만난다고 하더라도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님을 새겨야 한다. 어제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선입견이고 편견이다.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지.’, ‘사람이 변하면 얼마나 변하겠어.’, ‘그리고 인성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야.’, ‘오죽하면 사람이 바뀌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 있겠어.’ 등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의 존재양상들이다. 그러나 어제의 ‘그’ 사람으로 기억해 버리기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먼저 속상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한 이유는 분명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떤 이유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을까? 그 중 하나가 ‘어제’의 사람을 ‘오늘’의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어제’의 전과범이 ‘오늘’의 전과범이 될 수 없고, ‘어제’의 천사표 사람이 ‘오늘’의 천사표 사람이 아닌 것과 같다. 사람의 몸에 벤 습관이나 인성은 쉬이 바뀌어 지는 것도 안 바뀌어 지는 것도 아니다. 크게 변화하거나 달라지려고 마음먹는 것은 ‘변화하지 않겠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냥 조금씩 한 발 한 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래서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작은 희망의 불씨라 할지라도 지금은 그 불씨가 보이지 않고 힘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꺼지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자기의 몫을 할 것을 믿어본다.

매일 눈을 뜨면 내게 주어진 메시지가 다르다. 어느 날은 시기심의 주제를 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창조주를 생각하게 하고, 어느 날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메시지를 몸으로 느낀다. ‘날로 날로 새로워라’란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깊이가 달라진다.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은 일취월장과 다르지 않지만, 내가 느껴지는 의미는 소소하다. 매일 주어진 하루 속에서의 ‘자신의 변화’를 기억한다. 자신의 변화가 먼저이다. 그 변화가 없어도 좋다. 무조건 변화가 좋은 것인가? 나에겐 아니다. 자신을 점검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도 좋다.

자신의 변화에 으뜸이 되는 것은 마음가짐이다.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 자녀를 키우는 마음, 친구를, 애인을, 지인들, 나와 무관한 사람들에까지 펼쳐지는 마음가짐은 늘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제’의 사람이 ‘오늘’의 사람이 아닌 것은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가 아님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먼저 알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