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건축주 자체 작품 선정 폐해 반복
있으나 마나한 조례? 공모 권유 ‘뒷짐만’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 업무가 세종시로 이관되기 전 2016년 행복청에서 설치한 세종시 2생활권 공동주택 미술작품 공모 당선작 전시 모습. (사진=세종시)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 업무가 세종시로 이관되기 전 2016년 행복청에서 설치한 세종시 2생활권 공동주택 미술작품 공모 당선작 전시 모습. (사진=세종시)

세종시 지역 시각예술 작가들의 한숨이 깊다. 도시 곳곳에 대형 민간건축물이 건설되고 있지만, 수 년 째 미술작품 선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상심에서다.

10일 시에 따르면, 시는 현재 민간건축물 내 미술작품 설치 심의 업무를 맡고 있다. 해당 업무는 지난 2018년 1월 15일 행복청에서 세종시로 이관됐다. 시는 같은 해 5월 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심의위원회 구성과 내용 등의 규정은 ‘세종특별자치시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른다.

시에 따르면, 지난 3년 간 설치된 미술작품 수는 2017년 42점, 2018년 33점, 2019년 23점 등 총 98점에 이른다.

선정된 작가와 작품, 심의위원 명단이나 심의록이 공개되고 있지 않아 지역 작가 선정 비율이나 관련 통계 등은 알 수 없다.

세종시 시각예술 작가 A 씨는 “아파트와 상가, 민간·공공건물 등 세종시에 수많은 건물이 지어지고 있지만 작품 선정에 지역 작가들이 끼어들기 어려운 구조”라며 “건설사와 시행사가 임의로 작가를 지정해 작품을 설치하는 일도 다반사다. 시행사에 소속돼다시피 한 작가들이 자리를 꿰차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조례 있으나 공모 ‘권장’ 수준에 그쳐

세종특별자치시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 미술작품 선정 시 공모제 도입을 권장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자료=세종시)
세종특별자치시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 미술작품 선정 시 공모제 도입을 권장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에 따라 국내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은 건축 시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규정돼있다.

법에 따르면, 민간 건축주는 연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 신·증축 시 건축 비용의 범위에서 시·도 조례로 정하는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해야 한다.

법에 따라 각 지자체는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회를 구성, 미술작품의 작품성과 적절성을 평가한다. 이 심의를 통과해야만 건축주는 건물 사용승인을 받을 수 있다.

세종시도 조례를 통해 40명 이내의 미술작품심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있다. 관련 업무 공무원과 미술·건축·환경·공간디자인·도시계획 분야 전문가가 위원으로 포함된다.

다만, 작품 선정 투명성 확보, 다수 작가 참여 확대 등을 위한 공모제 도입은 권장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일부 지자체가 이면 계약에 따른 정당한 대가 미지급, 과다 경쟁에 따른 로비, 셀프 심의, 소수 작가 편중에 따른 독과점, 작품 부실 등의 문제로 공모를 법제화 하고 있는 추세와는 대조적이다.

실제 지난 2018년 세종시에서도 작품 심사 직후 선정 작가에게 사적인 연락을 취해 금품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또 다른 지역 시각예술 작가 B 씨는 “도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작품 설치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을 계속 듣고 봐왔다”며 “전국적인 폐해가 새로 건설되는 세종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관리·감독기관이 민간건축주가 공모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작품을 선정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경기도 미술작품 설치에 관한 조례안 일부. 공동주택과 도 산하 공공기관에서 건축물을 지을 경우 반드시 공모 과정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료=경기도)
경기도 미술작품 설치에 관한 조례안 일부. 공동주택과 도 산하 공공기관에서 건축물을 지을 경우 반드시 공모 과정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에 가장 많은 제약을 두고 있는 지자체는 경기도다.

경기도는 이미 지난해 공동주택과 도 산하 공공기관에서 건축물을 지을 경우, 반드시 건축주가 공모를 거쳐 미술작품을 선정·설치하도록 규정했다.

또 미술작품 심의에서는 지역 출신 작가 작품 가산점 부여도 허용하고 있다. 심의위원 구성에 있어서도 제척·기피·회피 규정에 ‘위원으로 위촉된 사람은 위촉기간 중에 도내에서의 미술작품에 대한 출품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아 심사 투명성을 높였다.

심의위원회 회의록은 심의위 종료 후 속기록으로 정리해 도청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부산시도 마찬가지다. 건축주가 작품을 임의 선정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고려, 지난해 공청회를 열어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현재는 심의위원 명단과 회의록 공개는 물론이고, 지역 신진 작가 가산점이나 공모제 적용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시각예술 작가 A 씨는 “많은 지자체에서 심의에서 사실상 지역 작가를 우대하고 있고, 1년에 한 작가가 몇 점 이상 독점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두고 있다”며 “그래야 지역 작가들에게도 기회가 온다. 지역 정서와 환경에 맞으면서 작품성까지 담보할 수 있는 미술품이 설치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시는 현재 단층제 행정 구조라는 한계성과 엄격한 심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작품 심의 시 지역 작가 우대 기준은 두고 있지 않으나 심의위원 구성 시 지역 전문가 위촉 비율은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부적절한 공공미술품 철거 등이 이슈가 되면서 심의 신청 자체를 엄격하게 하고 있다. 가결되더라도 조건부 가결이 대부분이고, 부결되는 건수도 꽤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종시가 단층제이기 때문에 타 지자체처럼 공모 추진 업무를 기초단체에서 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도 있다”며 “타 시도보다 위원 구성이나 심의 시 꼼꼼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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