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19’와 민주주의 위기
‘포스트 코로나19’와 민주주의 위기
  • 김재중 기자
  • 승인 2020.04.09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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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의 눈] 가장 튼튼한 방역체계는 민주주의

코로나19 이후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로 경제 분야에 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미시적 관점에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보호와 같은 피해복구 방법론, 거시적 관점에서 성장률 하락과 국가간 교역규모 축소 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산업적 관점에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레드오션(사양산업)과 블루오션(성장산업)의 전환 속도가 혁명적으로 빨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이전에도 대형마트와 같은 기존 유통구조에서 배달 기반의 온라인쇼핑 쪽으로 무게중심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향후 이 움직임이 훨씬 빨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19 이후, 인간 삶의 방식을 밀집에서 분산으로, 소통구조는 인터넷 기반의 비대면 방식으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적 통제는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산업·경제적 측면의 대전환은 차치하더라도 20세기를 거치며 형성됐던 인본주의적 연대나 광장 민주주의, 개인의 인권과 같은 가치가 ‘생명과 안전’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생존가치에 밀려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생명과 안전’의 가치가 민주주의에 앞서는 근원적 가치라는 것에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한시적 비상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긴급하게 발동된 ‘국가적 통제’가 잔영처럼 유지되고, 일상화되는 것은 아닌지 ‘바이러스 공포’ 이상의 공포가 밀려오는 게 사실이다.

민주주의 전통과 역사가 오랜 서구 선진국조차도 이번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일방적으로 제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동권, 집회·결사, 언론의 자유 등 민주주의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헌법적 가치는 코로나19 앞에 너무도 손쉽게 무너졌다.

세계 자유민주주의 리더이자 경찰국가임을 자임해 왔던 미국,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마스크나 진단키트와 같은 구호방역물품, 의약품 확보에 ‘힘의 우위’만 활용하는 모습은 앞으로도 ‘자국 이기주의’가 유일한 국제관계의 원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나마 한국은 외국인 입국금지, 자국민 통행금지령과 같은 이동권 제약 없이 코로나19 비상상황을 통제하고 있다. 일부 외신들이 한국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발 빠른 방역시스템’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하지만, 자국이기주의나 통행금지와 같은 반민주적 통제 없이 대확산을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언론은 코로나19로 인해 자국이 민주적 통제력을 잃고 일방적 행정력을 발동하는 것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민주적 통제’ 시각에서 한국 역시, 대단히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행정편의 관점의 일방적인 결정이 별다른 반발 없이 수용되곤 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코로나19 확산방지’란 명분만 내세운다면, 누군가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CCTV로 이동경로를 확인하거나, 옥외 집회를 금지시키거나, 언론의 취재를 제약하는 등의 조치를 너무도 쉽게 취할 수 있었다.

독일 중앙정부가 취한 통행금지령을 두고 자치단체 등이 반발하며 ‘민주주의 역행’ 논란이 벌어진 것과 비교할 때,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중앙정부보다 자치단체가 통제에 더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치단체장 끼리 누가 더 빠르고 과감하게 통제하는지 경쟁하는 양상까지 보였다.

저 먼 곳에 있는 중앙정부는 ‘민주적 통제’에 대해 일말의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면, 가까운 곳에 있는 지방정부, 내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자치정부가 아무런 고민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목격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비상상황이다. 매우 한시적이고 특별한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정치·행정 권력이 잠시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제약한다 하더라도 다수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선한다는 것에 대해서 달리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피를 흘려가며 만들어낸 ‘민주주의 시스템’을 생명권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치품’이라고 인식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가 인간을 죽이는 것도 무섭지만, 인간이 인간을 경시하고 죽이는 것은 더욱 무서운 일이다. 민주주의야말로 인간의 생존권과 직결된, 가장 튼튼하고 검증된 방역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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