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상대방의 고통과 상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는 동일한 경험을 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고통과 상처는 자신의 것인지, 상대방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원인은 질투와 시기심에 있다. 인간의 질투와 시기심은 한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인간의 이기심은 인간의 선함을 뛰어넘는다. 인간의 종말에는 선함이 압도적이란 걸 믿고 있지만,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은 이기심이 많은 사람을 이겨낼 방법은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은 ‘36계 줄행랑’이다. 정확히 第36計 주위상(走爲上)으로 달릴 주(走), 할 위(爲,) 위 상(上으)로 전쟁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퇴각시켜 손실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라는 36계 최후의 전술이다. 즉 사기꾼이 마음먹고 덤비면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시기심은 참으로 은밀하다.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자신이 취할 것을 취한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선택한 것인데 상대방의 시기심으로 표현하면 되겠느냐’고 반문을 할 수 있다. 그 말도 맞다. 그 사람의 선택이다. 때론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항상 처한 상황을 무시하거나 방임하게 되면 큰 화를 입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도리(道理)라는 것이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이 한국인의 정서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강하면서 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악마와 같은 사람이든, 사기 기질이 많은 사람이든, 착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적어도 1%이상의 양심은 있다. 이 말은 도덕성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태어난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라오면서 양육자에게 어떤 영양분을 받았는지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지분은 천차만별이다. 개인에 따라서는 그 양심이 99%인 경우도 있고, 50%, 10% 등 다양하다. 99%의 양심을 가진 사람과 1%의 양심이 가진 사람이 만났다고 하면 아무리 그 선택이 자신의 몫이라고 하지만 99%의 질투와 시기심을 벗어날 사람이 얼마나 존재할까? 그것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시기심을 얼핏 보면 속 좁은 사람들이 느끼는 옹졸한 감정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시기심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이다. 원초적이기 때문에 각 개인마다 정도가 다를 뿐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다. 시기심과 유사한 것으로 질투와 탐욕이 있다.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기심은 자신이 열망하는 좋은 것을 다른 대상이 소유하고 있을 때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하며 그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충동이라면 질투는 시기심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적어도 삼자 이상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경쟁자에 의해 자신의 것이 뺏기거나 그럴 위험을 느끼는 상황에서 경쟁자에게 증오를 느끼는 것과 관련된다. 즉 시기심은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을 볼 때 고통을 느끼고, 질투하는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시기심이 은밀하다고 하는 것은 비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시기심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관계 안에서 들어나는 것과 들어나지 않음에 차이다. 우리는 어떠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와의 관계에서 아픔이 많다면 그 사람은 나하고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타인이 살아주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타인이 똑같이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항상 기준은 자신이다. 단 그 기준이 이기적이면 안 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자신만큼 소중한 사람은 없다’ 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기대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기대감은 자신에게 좌절과 헛된 욕망을 갖게 한다. 기대감이 생기면 의존하고 싶어 하고 동시에 불안이 올라온다. 그 불안은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제는 의존과 같다. 즉 의존하면서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이렇듯 의존과 통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혼자 서는 연습, 그리고 혼자라도 괜찮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처음 걷기 시작할 때는 기고 일어섰다 넘어지기를 수천 번 한다. 처음에는 엄마가 잡아주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일어설 때는 멀리서 박수 치면서 ‘여기까지 혼자 걸어와 봐’ 라고 하면서 응원과 지지만을 한다. 그 다음부터는 혼자서 잘 걸어 다닌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고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음을 무의식 중에 느끼며 살아간다. 그 사랑과 지지가 부모여도 좋고, 종교여도 좋고, 나 자신이어도 좋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자신을 학대하고 있다면 그 관계는 절대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또한 그 사람에게 사로잡혀서 다시는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자각해야 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아야 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내가 소중한 사람이니까’ 라는 답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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