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허태정 대전시장(왼쪽)과 양승조 충남지사. 자료사진.

이재명 지사의 경기도가 1300만 도민 모두에게 1인당 1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재난기본소득’으로 이름 붙여졌으나 ‘재난’보다는 ‘기본’에 무게가 실려 있다. 국가적 ‘재난’을 틈타 이 지사 자신의 경제철학인 ‘기본소득’을 홍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본다. 기본소득은 2016년 이재명 지사가 본격적으로 주장하면서 이 지사의 ‘철학’이 돼 있다. 

이 지사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책으로 국민 1인당 100만원씩 지급하는 ‘전국민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청했으나 답을 얻지 못한 상태다. 정부의 수용 여부가 최종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도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먼저 실시하는 것이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나 만약 경기도와 같은 방식을 채택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재난 극복에 ‘이재명 정책’을 사용하는 모양새가 된다. 

아이디어의 주창자가 차기 대권을 노리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작지 않을 것이 없다. 기본소득에 대한 ‘정치적 재산권’이 이재명 지사에 있는 것처럼 돼 있는 상황에서 그 정책을 정부가 수용한다면 정권의 얼굴이 상당 부분 이재명으로 바뀌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보수 트럼프도 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선택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기업인으로 발판을 닦아 대통령까지 오른 자본가다. 그런 그가 전국민에게 1000달러씩(1인당 120만원) 주겠다고 했다. 이 지사가 밀어붙이고 있는 재난기본소득보다도 과감한 정책이다. 경제정책에서 보수적인 미국과는 반대쪽이 많은 문재인 정부인데, 트럼프도 하겠다는 ‘진보적 정책’을 문재인 정부가 안 한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상할 건 없다. 정치인은 어떤 선택하든 정치적 이익과 계산이 깔려 있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도 트럼프의 1000달러 카드도 ‘정치’에서 나온 것이다. 

정치인에게 국가 사회의 재난은 위기이면서 기회다. 이 지사는 기회 포착에 능하다. 코로나 확산 주범으로 몰리던 신천지 교주를 체포하겠다고 직접 나서고, 모든 도민에게 10만원씩 지급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위기 활용 솜씨를 보여준다. 위기 수습의 목표를 국가 사회보다 지도자 자신에게 두는 경우가 문제다. 마스크 대란이 나자 엉터리 제품을 만들어 재미를 보는 장사꾼들이 나왔다. 정치판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으면 많지, 적지는 않다.

경기도는 기본소득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1조1200억 원으로 발표했다. 더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의미 없는 수치다. 서울 대전 등 대다수의 시도들은 경기도와 다른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효과도 경기도와는 다를 것이다. ‘재난 대책’이면 재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야 맞다. 기본소득은 재난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 부자들도 혜택을 본다. 재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 지사는 “복지정책도 아닌 경제정책에서 세금을 더 많이 낸 사람을 제외하는 건 이중차별”이라고 반박한다. 정확히 말하면 경제정책이라기보다 특수한 상황의 ‘재난정책’이고, ‘이중차별’이란 인식도 어패가 있다. 부자들은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세금도 더 내는 것인데 그게 왜 차별인가? 부자들은 그런 돈을 더 많이 받을수록 자기가 훨씬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기본소득의 궁극적 목표도 거기에 있고 그래서 찬성론자도 적지 않다.

경기도 기본소득은 대단한 도전 아닌 대단한 홍보

누구에게나 일정액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는 아름답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정치인이나 사상가라면 누구라도 한번은 꿈꿔봤을 목표다. 이젠 인공지능에 사람이 일자리를 빼앗기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기본소득이 불가피한 선택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보는 시각들도 있다. 아직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잘 사는 나라 스위스에서 월 300만원 기본소득을 놓고 투표를 해보니 77%가 반대였다. 

10만원은 기본소득으론 너무 적은 금액이고, 재난 상황의 1회성 지급이어서 ‘기본소득 실험’으론 의미가 없다.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부천시장이 반기를 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10만원씩 주는 것보다 소상공인에게 400만원 씩 주는 게 낫다는 의견을 냈다. 시군별로 집행 방법을 선택하도록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경기도가 “재난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시군들은 빼고 지급하겠다”고 압박하자 부천시는 손을 들었다. 명분있는 싸움이라 부천시장이 80만 부천시민과 함께 싸운다면 해볼만 했을 텐데 아쉽다.

부천시의 패배는 경기도와는 다른 재난 대책을 세우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낭패감을 준다. 경기도보다 관련 예산이 작고 기본소득이 아니라 생계비조로 일부 시민들에게만 더 많이 지급하는 다른 시도들은 ‘튀는 경기도’ 때문에 괜히 맥이 빠질 수 있다. 대전시도 그 중 한 곳이고, 충남도도 기본소득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기도가 아니라 대전시와 충남도의 방법이 옳다. 경기도의 기본소득은 대단한 도전이 아니라 대단한 홍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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