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의 허튼소리]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봄비 내린 뒤 모처럼 해맑던 날, 코앞의 동네 앞산을 산행하던 때의 일이 떠오른다. 우한 폐렴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수천 명이나 발생하고,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우리 대전 지역에도 확진자가 연일 속출-행정당국에서 발생장소와 확진자의 동선을 핸드폰으로 알려왔다-하는 관계로 외출을 자제한 채 집에서만 지내다가 갑갑증을 못 이겨 나선 길이었다.

우한 코로나 확산 때문인지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서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였다. 그날은 동네 마트에 갈 때 두어 번 썼던 마스크를 일광소독 하느라 베란다 햇볕 잘 드는 곳에 걸어 두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마스크가 있다 해도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불가피하게 사람들을 접촉하는 밀집장소에서나 썼지 툭 터진 공간에서는 잘 쓰지를 않았다. 또 평소에 산행을 할 때도 산 초입에 접어들면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벗어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안경에 김이 서리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굳이 맑은 공기 넘쳐나는 산속에서까지 마스크를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정부에서도 마스크 공급이 여의치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등산로를 오가는 사람들 거의가 마스크를 하고 있었고, 나처럼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은 간혹 가다가 눈에 띨 뿐이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근래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혹시라도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지 않은 나를 보고 어떤 불안감이나 불쾌감을 갖지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이 들어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옆으로 조금 떨어져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외진 길로 아예 접어들었다. 홀로 산행할 때 가끔 걸어본 오솔길인데 사람이 별로 없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한적한 길이라도 사람이 다니는 길인데 마주하는 사람이 아주 없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동안 홀로 걷고 있는데 나처럼 마스크를 하지 않은 한 젊은이가 맞은편에서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몇 발짝 앞에서부터 오솔길을 서너 발짝 벗어나더니 모자를 벗어 입과 코를 가리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조금을 더 걷자니 이번에는 코는 내놓고 입만 가린 사람이 마주 오다가 나를 보더니 얼른 마스크를 올려 코를 가리고 지나갔다. 

나는 저 사람들이 ‘나를 감염자로 의심하나?’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찝찝했다. 하지만 언짢은 기분을 떨쳐내며 걷다보니 문득 내 생각이 잘못됐을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나이가 많은 나에게 혹시라도 피해를 줄까 봐 그리 행동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나를 배려했다고 생각하니 찝찝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잠시지만 ‘공연히 다른 사람들을 의심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마음먹기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큰길에 나와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마스크를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서로 지나칠 때 유달리 경계심을 갖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그럴 것이라고 잘못 짐작했던 것이다. 

또 마스크는 본인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쓴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미세먼지조차 없는 날 산속에서까지 마스크를 해야겠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물론 이는 내 판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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