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물과 대화를 해보라
기물과 대화를 해보라
  • 김충남
  • 승인 2020.03.15 1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충남의 힐링고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기르고 있는 개는 가지고 노는 애완견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반려견(伴侶犬)으로 불리면서 일약 반려자(伴侶者)의 신분으로 급상승하였다. 

옛 선비들이나 옛사람에게는 반려견과 같은 반려기물이 있었다. 
문방사우(文房四友)인 벼루, 먹, 붓, 종이는 옛 선비들에게 있어서는 평생을 함께하는 반려기물이었다. 
지팡이, 의자, 칼, 거울, 담배통 같은 일상용품도 반려기물로서 자기분신처럼 사랑하고 소중히 하였다. 
이는 오늘날과 같이 기계로 대량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물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들어 그만큼 귀하고 소중하였으며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혼이 들어갔기 때문이라 하겠다. 

옛사람들은 그 기물에 좌우명이나 소망의 글을 새겨 넣고 혼을 불어넣어 마치 반려자나 벗처럼 함께 하였다. 
그 기물에 적어 넣은 글을 기물명(器物名)이라고 한다. 
기물인문학(器物人文學)이라고나 할까? 옛 선조들의 기물명, 기물인문학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 중국고대 은나라 시조인 탕왕은 목욕그릇에다‘날로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 매일을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글을 새겨 넣고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마 우리에게 알려진 최초의 기물명이 아닌가 한다. 

▴ 고려무인시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이규보는 벼루를 마치 평생의 고마운 벗으로 여기고 벼루에다 글을 새겼다.
“벼루야! 벼루야! 네가 작은 것은 네가 부끄러워 할일이 아니야, 
너는 한 치 웅덩이에 불과해도 끝없는 내 상상력을 펼치게 돕고 나는 여섯 자의 키에도 네 힘을 빌려 사업을 하는 구나 벼루야! 
나는 너와 함께 가리니 삶도 너와 함께, 죽음도 너와 함께”(小硯銘) 
여기에서 작자와 벼루는 단순한 소유자와 소유물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 의지하며 생사를 같이하는 벗과 벗의 관계다.

▴ 이규보는 몸을 기대는 안궤(案几)의 부서진 다리를 고치고서 “피곤한 나를 부축한 것은 너고 다리 부서진 너를 고쳐준 것은 나다. 
병든 이들끼리 서로 도와 준 것이니 누가 공이 있다 뽐내랴”는 글을 새겨 넣었다. 
여기에서 작자와 안궤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상부상조하며 공생하는 관계다.

▴ 영정조시대 문인인 이용휴는 그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에 이런 글을 새겨 넣었다.
“나무가 거꾸로 자라면 사람이 바로 잡고 사람이 위태롭게 걸으면, 나무가 부축해 준다.”(木倒生 人正之 人行危 木支之) 
여기에서도 사람과 지팡이는 서로 공존하는 관계이다. 이용휴는 벼루에다 “내 이름이 닳지 않는 건 네가 닳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작자는 벼루에다 벼루의 덕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 19세기 학자였던 유신환은 어린아들에게 나막신을 사주고 그 나막신에다 글을 새겨 넣었다.
“미투리 신으면 편안하고 나막신 신으면 절뚝거리지, 그래도 편안하여 방심하기 보다는 절뚝거리며 조심하는 편이 나으리라.”
이 글에서 나막신을 신으면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하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언제나 조심스럽게 살라는 아버지의 사랑이 나막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 조선정조시대의 실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이덕무는 베고 있는 목침에“군자가 베고 잘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선(善)과 인(仁)이 아니겠는가”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 

이 글에서 작자는 베고 자는 목침에 자신의 신념을 새겨 넣어 꿈속에서 까지 지키겠다는  굳센 의지가 엿보인다.

▴ 197Cm나 되는 이순신장군의 장도(長刀)에는 이런 검명(劍名)이 새겨져 있다.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장군의 넘치는 기상과 전승(戰勝)의지가 칼에 새겨져 있다.

▴ 그렇다. 내가 쓰고 있는 기물을 반려자처럼 소중히 사랑하라. 
그리고 거기에 혼을 불어넣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해보라. 
말 못하는 기물이지만 인간보다 내 마음을 더 알아주리라.


김충남 인문학교육 연구소장.
김충남 인문학교육 연구소장.

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堂)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 대전 KBS 1TV 아침마당 "스타 강사 3인방"에 출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