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옥중 정치’ 먹히는 나라
[칼럼] ‘옥중 정치’ 먹히는 나라
  • 김학용
  • 승인 2020.03.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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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칼럼

한 나라의 정치의 민주화 수준을 판단해볼 수 있는 기준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옥중 정치의 가능 여부’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교도소에 갇힌 야권 인사의 주장이 국민들에게 먹혀드는 현상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나라에선 보기 어렵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선 ‘야권 인사의 옥중 메시지’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어떤 나라에서도 야권 인사가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일은 벌어질 수 있지만 민주국가에서 ‘옥중 정치’는 상상할 수 없다.

가택연금 상태나 나라를 떠나서야 목소리를 낼수밖에 없는 망명정치도 옥중정치와 다를 바 없다. 옥중서신만이 수단도 아니다. 때론 목숨을 건 단식으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나라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야권 인사의 옥중정치가 대서특필되며 주목받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옥중정치는 독재국가나 보복정치로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들에서만 볼 수 있다. 남아공과 미얀마가 민주국가였다면 넬슨 만델라와 아웅산 수지는 나올 수 없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나올 수 없는 ‘옥중정치’

우리나라에선 김영삼 김대중이 만델라 같은 역할을 했다. 그들은 목숨 걸고 싸워 결국 이겼지만, 문민정부 탄생 이후에도 옥중정치가가 힘을 받는 세상이 또 올 거라고 생각한 국민들은 거의 없었다. 유력 인사가 구속될 경우 정치적 반발이나 저항이 가능은 하겠지만 그게 권력에 타격을 안기는 ‘옥중 정치’는 되기 어렵다. 옥중 정치가 가능하다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영삼이 역사바로세우기 명분으로 전두환을 잡아넣자 단식으로 저항하며 반발했지만 옥중정치는 불가능했다. 김영삼은 전두환이 국민의 여론을 업고 자신에게 정치적 압력을 가해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통령보다 수감자의 말에 더 공감할 때 옥중 메시지는 힘을 받고 옥중정치가 가능해진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옥중서신이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야당이 단합하여 정권을 심판하자는 게 요지다. 야권은 대환영이고 여권에서 맹비난이다. 야당이 반기는 건 이해가 되지만 여당의 ‘강한 반응’은 의외다. 여당은 “최악의 정치재개 선언”이라며 비판했다. 옥중서신을 범법자의 한낱 헛소리로 치부하지 못하고 정색해서 비난하면 이거야말로 상대방의 옥중정치를 거들어 주는 것 아닌가? 징역 20년 이상을 받은 중범죄인의 한 마디가 그리 두려운가? 고양이가 독에 든 쥐를 무서워하는 꼴이다. 

옥중 서신의 저자인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기억은 달라진 게 없다. 듣도 보도 못한 여성이 대통령 곁에서 나랏일을 쥐락펴락하며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은 충격이었다. 결국 대통령은 탄핵당하고 감옥에까지 들어가는 신세가 됐다. 여야와 진영 논리를 떠나 -그래서 당시 여당 일부까지 탄핵 찬성-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당한 처벌로 여겼다.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 원의 중형이 내려질 때도 응당의 대가로 생각했다.

진보-보수, 공수 뒤바뀐 옥중 정치

재판 결과가 뒤집혔다는 얘기는 없다. 그는 여전히 중죄인이다. 재판이 합당하다면 옥중정치에 나설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YS DJ가 걸었던 가시밭길을 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의 옥중 서신은 한낱 웃음거리로 치부돼야 정상이다. 적어도 이 정권의 반응은 그래야 맞다. 여권은 오히려 화들짝 놀라 비난을 쏟아내며 ‘옥중정치’에 힘을 실어줬다. 민주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옥중정치가 이 정권에선 쉽게 먹혀들었다. 이 정권의 수준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화 세력의 후배들이 집권하면 다른 건 몰라도 민주주의는 나아질 줄 알았다. 더 정의롭고 더 공정한 사회가 될 줄 알았지만 지난 3년을 보면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조국 사건이나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사건 등에 대한 집권세력의 기막힌 태도를 보면서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보수 야권’이 ‘진보 권력’을 향해 옥중정치를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만고의 역적으로 쫓겨난 전직 대통령의 옥중 부활은 그 자체가 미개한 정치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다.

문재인 정권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엔 과거 목숨 걸고 옥중정치의 길을 갔던 민주화 세력의 후예들이 많다. 옥중정치는 민주화 세력의 자랑스런 전통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민주 세력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는 없게 됐다. 한때 민주 세력의 옥중정치에 마음졸이던 세력들이 이젠 ‘옥중정치의 창’을 들고 나섰다. 막아야 하는 쪽은 옥중정치 선배의 후예들이다. 옥중정치의 공수가 서로 바뀌었다. 1차 결판은 4.15 총선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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