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타고 내려오는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사람이 보였다. 타려는가 보다 하고 뒤로 물러서는데 정작 타지 않고 몸을 돌린다. 내가 위험하거나 냄새나는 물건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그 사람은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 날,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막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그대로 올라갔다. 발걸음을 서두르다 허탈한 마음으로 닫힌 문 앞에 멈춰 바뀌는 숫자판만 바라봤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과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도 아랑 곳 없었다. 평소라면 ‘열림’버튼을 눌러 함께 타고 올라갔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요즘에는 그런 호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섭섭하다거나 매너가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개념이 없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시내버스에서는 서로 미루며 내림 버튼을 누르지 않다보니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사라져가고 있는가 싶다. 악수나 말로 하는 인사는 그친지 오래다. 눈인사만 해도 반갑다. 코로나19라는 정체모를 바이러스가 일상의 풍경을 흔들어 버리고 있다.

아파트관리소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수시 안내방송을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 손세정제를 마련해 놓았다. 끈으로 묶어 두지 않았는데도 여러 날 그대로 있다. 비록 상황은 어수선하더라도 성숙한 시민의식이 바래지는 않았다. 관리소에서는 현관과 엘리베이터를 하루 두 번 소독한다. 관리소에 전화하여, 게시판에 소독안내문을 붙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알림과 더불어 요즘 같은 시기에 입주민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 정문 앞에 약국이 있다. 가깝기도 하려니와 약사가 살갑고 성실하여 단골로 찾는다. 시내 병원에서 매달 받아오는 처방전도 불편함을 무릅쓰고 그 약국에 갖다 준다. 근처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이 아니라 약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러면 처방전을 주고 이, 삼일 후 다시 들려 약을 받아 온다. 두 번을 들르자니 약사와 나 모두 번거롭기는 하지만 동네약국 이용이라는 명분으로 습관이 되었다. 며칠 전, 그 날도 약을 찾으러 갔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마스크가 있느냐고 묻는 전화였다.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온통 멈추고 비우고 멈춰 세웠다

가기천 전 서산시부시장, 수필가

어느 때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아마 ‘언제 쯤 들어오느냐?’고 물었던 모양이다.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직접 대면한 상황이니 혹시나 해서 “좀 있느냐?”고 물으니, “어제 얼마가 들어 왔는데 순식간에 동났다”고 했다. 약국 입구에 ‘마스크, 손세정제, 체온계 품절’이라는 안내문을 본 터라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틀 전, 처방전을 갖다 주면서 마스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서, ‘단골’을 구실로 ‘약 봉투에 미리 한 몫 쯤 챙겨 넣어 주지 않을까?’하는 이기적인 바람은 어디론가 숨었다. 멋쩍음을 알아 차렸는지 “지금 막 손세정제가 들어왔다”고 하여 얼른 샀다. 

그나마 배려이고 선심으로 느껴졌다. 이제 마스크를 요일 판매제로 한다고 하니 구입이 좀 수월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국에서 고심 끝에 궁리를 거듭하여 마련한 대책이라지만, 일선 행정조직을 활용하여 배부하자는 여론에는 어떤 이유로 어려움이 있는지 알려 주었으면 궁금증이 풀리겠다. 

온통 멈추고 비운 듯하다. 코로나19가 뉴스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모든 모임과 약속이 취소되고 미뤄졌다, ‘사회적 거리’를 두라고 하니 이러다가 마음마저 멀어질까 걱정이다. 현관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면 이웃사촌으로 인사하던 정이 사그라지고 데면데면하게 될는지 조바심난다. 훈훈한 봄바람에 바이러스 모두 싹 날아가고 하얀 이 드러내며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소망한다.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관계자들의 고충과 노고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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