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생 듀오 하주석과 윤호솔에게 거는 기대
1994년생 듀오 하주석과 윤호솔에게 거는 기대
  • 여정권
  • 승인 2020.03.0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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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권의 ‘야구에 산다!’] 부상 회복 필요한 하주석, 재능 회복 필요한 윤호솔

1994년생인 하주석(왼쪽)과 윤호솔(오른쪽).
1994년생인 하주석(왼쪽)과 윤호솔(오른쪽).

“코로나 19”의 기세가 줄어들지 않으면서 2020시즌을 준비하는 한국프로야구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시범경기가 전면 취소된 상황에서 3월 28일(토)로 예정된 시즌 개막도 잠정적으로 1주일 연기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1주일 연기된 4월 4일(토)에 예정대로 시즌이 시작될 수 있느냐이다. 현재처럼 “코로나19”의 기세가 잦아들지 않는다면 개막전 연기를 연장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프로야구위원회는 다각도의 대책을 논의하며 원칙적으로는 1주일 단위로 추이를 지켜보면서 시즌 개막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144경기 모두, 팬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스프링캠프를 마무리 중인 구단들은 귀국 일정에 애를 먹고 있다. 현지에서 훈련 일정을 연장하는 구단도 있고 예정대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구단도 있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들의 거취도 고민거리로 자릴 잡고 있다. 한화이글스 선수단은 예정대로 한국으로 돌아와서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지만 외국인 3인방은 일단 입국을 연기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선수단들이 “코로나 19”의 위험으로부터 노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실내 스포츠의 경우, 리그 중단과 외국인 선수들의 이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부디 프로야구도 각 구단들이 만반의 준비를 해서 잘 이겨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지난 칼럼에서 “야잘잘” 베테랑 김태균과 이용규의 이야기를 전해드린 바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야잘잘” 두 번째 이야기로 젊음의 하주석과 윤호솔(개명 전 윤형배)의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한다. 하주석은 아직 기량이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한화이글스의 차세대 프랜차이즈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 안타까운 부상으로 지난 시즌을 소화하지 못해 누구보다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선수이다. 여기에 지난 시즌 트레이드로 고향 팀 유니폼을 입은 윤호솔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하주석과 윤호솔은 입단 연도는 다르지만(하주석이 한 해 빠름) 1994년생으로 한화이글스의 미래임이 분명하다.

완벽한 “부상 회복”이 필요한 한화이글스의 차세대 프랜차이즈 하주석

하주석은 한화이글스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프랜차이즈 선수다. 지난 시즌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팬들과 만날 수 없었지만 지난 3년 여 동안 최고의 인기 선수는 김태균도, 정근우도, 이용규도 아닌 하주석이었다. 유니폼 판매량이 제일 많을 정도로 많은 팬들에게 한 몸에 인기를 받았던 것이 하주석이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베테랑들이 중심인 팀에서 거의 유일하게 젊음을 내세운 것도 한 몫을 했다.

하주석은 2012년 신일고를 졸업하고 한화이글스에 전체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되었다. 물론 그 당시 NC가 창단되면서 우선 지명으로 이민호와 노성호, 두 투수를 지명하면서 공식적으로 3순위 지명이 된 것이지만 신생팀의 특성상 투수 자원이 더 필요했고 야수로서 가장 높은 지명을 받아 그만큼 가치와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은 선수였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2009년 그러니까 하주석이 신일고 1학년 시절, 하주석은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다. 이영민 타격상은 한 시즌 동안 가장 좋은 타격을 선보인 선수에게 주는 최고의 공격상이다. 그런 상을 17살의 1학년이 받았다는 것은 하주석이 얼마나 가능성이 많은 선수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하주석은 청소년대표에도 선발이 되어 현재 리그에서 함께 활약하고 있는 이민호, 한현희, 박민우, 구자욱, 류지혁, 김성욱, 장진혁 등과 태극 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활약하기도 했다. 이런 활약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하주석은 한화이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하주석은 전략적으로 빠른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한 상무에서 제대 후 2016시즌부터 본격적으로 1군 주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서 세 시즌 연속 11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주전 유격수로서의 가치를 굳혀가면서 성장의 폭도 넓혀갔다. 하지만, 많은 기대를 안고 시작한 2019시즌에 개막 5경기 만에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으면서 그라운드를 떠나고 말았다. 수술과 지루한 재활이 이어졌지만 하주석은 그라운드 복귀를 위해 서두르지 않고 재활에 최선을 다했다.

2020시즌을 맞아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게 된 하주석은 공격과 수비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려했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주전 유격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내야수에 유격수인 포지션 특성상 부상 재발에 대한 우려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

하주석이 한화이글스의 라인업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타격에서 선구안에 신경을 써야 한다. 통산 볼넷/삼진(79/390)의 비율이 거의 1/5에 달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수정되지 않으면 좋은 타격을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호타준족의 재능을 갖고 있지만, 시즌 최다 홈런은 11개(2017시즌), 도루는 14개(2018시즌)에 불과하다. 조금 더 힘 있고 빠른 공격력이 갖춰줘야 하주석의 가치를 더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부상 전 하주석의 수비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부상 후유증과 재발에 대한 두려움만 떨쳐낸다면 수비에서는 120% 제 몫을 해줄 것이다. 타격이 하주석의 성장에 분수령이 될 것이다.

아마추어 시절의 “재능 회복”이 필요한 윤호솔 

윤호솔(개명 전 윤형배)은 아직 낯설다. 그래서 필자도 개명 전의 이름을 아직까지 함께 쓰고 있다. 하지만 올시즌을 치르고 나면 그럴 필요가 없기를 기대해본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한 윤호솔은 고등학교 시절 또래 중에서 최고였다. 2013년 신생팀 NC에 대졸 투수 이성민과 함께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면서 받은 계약금이 6억원이다. 이 규모만 보더라도 윤호솔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함께 우선 지명된 대졸 이성민의 계약금이 3억원이었다.

윤호솔은 청소년대표 시절, 1994년생 동갑내기인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와 라이벌리를 형성하면서 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현재 LA에인절스에서 뛰고 있는 “이도류” 오타니와 비교될 정도의 잠재력과 재능을 선보였던 게 바로 윤호솔이다. 최고 구속 152km에 달하는 직구와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까지 다양한 변화구도 구사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형 투수가 윤호솔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60km를 던지며 이슈를 뿌린 오타니와 비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윤호솔은 프로 무대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에이스 역할을 하느라 많은 피칭을 한 것이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겠지만 2013년 입단 후 2경기만 소화하고 어깨에 통증을 느꼈고, 2014년에는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하게 되면서 선수 생활에 위기가 온다. 수술 후 재활 기간인 2015년과 2016년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2017년 소집 해제 후에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이에 NC는 2018시즌 개막을 앞두고 한화의 포수 정범모와 윤호솔을 트레이드한다. 윤호솔은 프로 데뷔 6년 만에 고향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아마도 NC가 창단되지 않았다면 2013년 윤호솔은 이미 이글스의 유니폼을 입었을지 모른다. 고향 팀에 입단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은 윤호솔은 예전의 기량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정권 대전MBC 프로야구 해설위원(이학박사).
여정권 대전MBC 프로야구 해설위원(이학박사).

그리고 2019시즌 비로소 1군에 얼굴을 내밀면서 세 경기에 출장했다. 하지만 큰 활약은 없었다. 그럼에도 윤호솔은 희망을 보게 됐다. 지난 6년간 아파서 제대로 던진 적이 없었으나 2019년에는 아픔을 느끼지 않고 2군에서 꾸준하게 출장을 하게 된 것이 이제 비로소 자신의 공을 제대로 던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밸런스를 찾아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었다. 윤호솔은 이 말에 답을 내놓았다. 시즌 후 치러진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150km를 던지는 위력을 선보인 것이다. 

윤호솔은 이 여세를 몰아 스프링캠프 명단에도 포함되어 훈련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만약 윤호솔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시즌이 된다면 선발이든 불펜이든 한화이글스의 마운드는 천군만마를 얻게 된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예전의 직구 스피드를 회복한 윤호솔.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 구사 완성도도 높은 윤호솔. 윤호솔의 성장은 한화이글스의 마운드의 미래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의 스프링캠프를 마무리하는 한화이글스 선수들. 1999년 첫 우승 당시 전지훈련 장소가 미국이었다. 그 좋은 기운을 받아서 부상 없이 값진 스프링캠프를 마무리하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귀국 후, 국내에서 가질 훈련에서도 선수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지도자들도 팀의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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