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승전’ 코로나 공포, 이성적 결말 기대한다

#. 이른 아침, 지하철 안에는 평소보다 더 깊은 침묵이 흘렀다. 하얀색, 검정색. 열에 일곱 여덟은 마스크를 끼고 연신 경계의 눈초리로 주위를 살폈다. 행여 어디선가 기침소리라도 들리면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멋쩍은 누군가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만들어낸 출근길 풍경이다. 

#. 저녁 술자리에서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안주거리로 등장했다. 방학 중 고향에 갔던 중국 유학생들의 한국 방문을 차단해야 한다느니, 길거리에서 중국어만 들려도 기분이 꺼림칙하다느니 하는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지고 수긍되곤 한다. 중국인을 병원체와 동일시하는 편견이 2020년에 가당키나 한 말인가. 술자리 분위기를 깨뜨리기 싫어 혼자 화장실에 가서 귀만 씻고 돌아왔다. 

#. 대전의 한 종합병원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확진환자가 발생했으니 이 병원 방문을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지인을 통해 직접 들었다”며 이 소식을 언론사에 제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해당 병원은 문의전화 폭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 가짜뉴스 작성·유포자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 아우성은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에서 극한으로 치달았다. 중국 우한에 거주하던 교민들의 임시생활시설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우한교민 수용 절대 반대’, ‘경찰인재개발원 우한폐렴 격리시설 정부는 즉각 철회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형 사진을 붙인 트럭과 보수단체 회원의 절규도 어렵지 않게 목격됐다. 

#. 일부 정치인들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이들은 우한교민 임시생활시설을 충청권으로 정한 것도, 천안이 아닌 아산과 진천으로 결정한 것도 모두 ‘지역 홀대’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핫바지론’까지 재등장했다. 보수 야당의 정치공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기미다. 진보와 보수 어디에도 뜨뜻미지근한 지역이지만, ‘충청 홀대, 핫바지론’만큼은 참지 못하는 곳이 또 충청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충청의 민심은 우한교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지 않았다. 31일 교민들을 태운 버스가 김포공항을 출발해 아산의 경찰인재교육원 정문에 도착할 때까지 이들은 창밖에서 ‘우한교민 수용 결사반대’와 같은 현수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민들은 이날 오전 회의를 열고 정부방침을 수용키로 하고, 현수막도 자진 철거했다. 정부에 대한 앙금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을 박대하지 않는 충청인의 심성까지 놓아버리지는 않았다. 

#. 인터넷상에는 ‘무지가 공포를 낳고, 공포가 광기를 낳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상당한 호응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기침 등 타액이 분출된다고 해도 2미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바이러스가 공중으로 멀리 전파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를 무시한 괴담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행정은 과도할 만큼 철저히 대응하고, 정치는 선동을 멈추고 차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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