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지난해 4월 청주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당정협의회. 자료사진.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들이 꽤 있다. 통반장협의회도 그런 모임 중 하나다. 지인 한 분은 언젠가 통반장협의회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소개했다. “대구에서 한 말씀 하시고, 광주에서 한 말씀하시고... 그리고 기타 지역... 어디서 할까? 강원도에서 하실까 충청도에서 하실까?...” 회의 진행자의 말에서부터 영호남과 달리 충청의 자리는 없다는 뜻이었다. 충청은 이제 ‘기타 지역’으로 분류될 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관광 거점도시(1곳은 국제관광도시) 선정에서 충청도만 빠졌다. 도시마다 1000억 원씩 지원되는 이 사업에 영남(부산 안동)과 호남(전주 목포)에서는 2개씩 뽑혔으나 충청도에선 한 개도 없다. 대신 강원도(강릉)에서 들어갔다. 거점 도시 선정에 지역 안배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충청권은 ‘기타 지역’으로 분류된 게 분명하다. 충청에선 보령과 청주가 신청을 했다가 물을 먹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라는 이 사업에 백제의 고도 공주 부여가 처음부터 빠진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호남 2개, 영남 2개 충청 0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통반장협의회 사회자의 ‘기타 지역’은 무심코 나온 말일 수 있으나, 정부가 관광거점도시 5곳이나 뽑는 데 충청만 빠진 것은 어쩌다 생긴 우연한 결과로 보기 어렵다. 심사 과정에서 그런 결과가 나올 수다고 해도 이를 받아들여 확정한 것은 정부의 뜻이다. 만약 심사위원의 1차 심사에서 충청 2개 영남 2개 호남이 0개라는 결과가 나왔다면, 혹은 충청 2개 호남 2개 영남 0개가 나왔다면, 문화관광부가 이를 그대로 확정할 리 없다. 지역 안배를 명분으로 적어도 하나는 호남 또는 영남에도 배정할 것이다. 그게 옳은 정책이다.

지난번에 한 얘기를 또 꺼내서 안됐지만, 대전 충남에 대한 혁신도시 배제도 문제의 본질은 같다고 본다. 대전 충남 배제는 수도권을 제외한, 부산 대구 광주 등 13곳의 지방이 나눠갖는 ‘지역균형발전의 빵’을 대전과 충남에만 못 주겠다는 ‘지역 이지매(따돌림)’ 현상이 분명한 데도 정부는 이지매를 가하는 지역들의 편에 서 있다. 그래서 대통령조차 “선거를 거치면서 검토해보자”는, 하나마나 소리를 한다. 이 또한 ‘기타 지역’이 받는 대접이다.

‘충청=기타지역’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만든 홍보영상에서도 확인된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대구서문 시장에서 서문시장에서 부산자갈시장에서 국민들과 만나 막걸리 잔 기울이며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 속에 광주 부산 대구는 다 나오지만 대전은 빠졌다. 이것만 가지고 시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통반장회의 사회자의 ‘충청=기타 지역’ 인식과 다를 바 없고, 더 나아가 정부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너무 심각한 ‘정치적 지역주의’

지금 정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치적 지역주의’는 너무 심각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현 정권의 탄생과 유지에 절대로 필요한 확실한 아군 지역(A급), 아군으로 만들 수 있는 준아군 지역(B급), 적군이어서 오히려 대놓고 무시할 수 없는 지역(C급), 그리고 정권으로부터 아무 관심도 못 받는 ‘기타 지역’(D급)으로 나뉘어 있다. 영호남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지역은 D급으로, 선거 때만 잠깐의 쇼만 필요한 지역이다. 수도권은 별도로 챙기지 않아도 되는 수도권이 이라서 그렇고 강원도는 인구가 너무 적어서 그렇다는 이유가 있는데, 삼남(三南)의 하나였던 충청은 어쩌다 ‘기타 지역’이 되었나?

충청 인구가 호남을 추월한 상황인 데도 충청(대전 충남)의 정치적 영향력은 도리어 쇠퇴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동남권신공항 문제 때 부산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싸우자 박근혜 대통령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호남고속철도노선 결정 때는 충북 국회의원이 시민단체와 함께 부강 터널을 막겠다고 나서면서 결국 오송이 분기역을 따냈다. 이런 정치인들이 없었다면 신공항과 호남선은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대전 충남에도 이런 시도지사, 국회의원이 있었다면 아마 ‘기타 지역’으로까지 전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지역인 우한에서 피신해오는 교민들의 수용지로 아산과 진천이 선정됐다. 처음엔 천안이 거론되다가 아산 진천으로 바뀌었다. 모두 충청 지역이고, 옮겨간 곳이 야당 국회의원의 지역구여서 입방아에 오른다. 교민은 비행기로 오기 때문에 전국 어디든 수용이 가능할 텐데 하필 충청을 선택한 이유가 뭔지 궁금해지는 것은 ‘기타 지역’의 일원으로서 자연스런 의문이다.

지역감정보다 더 사악한 ‘지역차별 정책’

아산 진천 주민들은 고령의 노인들이 많아 안전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당연한 걱정이나 주민들이 양보해야 한다. 그들을 안 받으면 먼저 나설 곳이 있겠나? 대신 정부는 더 철저한 방역시스템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는 정부를 못 믿기 때문이다. 일본은 송환한 자국의 우한 교민을 격리 수용하지 않고 자가 격리를 당부한다고 한다. 일본은, 정부가 국민들을 믿고 국민들도 정부를 믿는다는 뜻이다. 

누구든 지역감정과 지역대결을 조장해선 안 된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말도 글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본 기사는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쓴다. 그런 말과 기사보다 백 배 천 배 더 사악한 게 이를 버젓이 정치에 활용하고 정책으로 내놓은 정부의 노골적인 지역차별 정책이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지역균형을 외치지만 오히려 지역차별이 어느 때보다도 심한 정권이 지금 정부다. 적어도 충청(대전 충남)에겐 그렇다. 그게 아니면 ‘호남 2, 영남 2, 충청 0’은 이해할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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