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기자들이, 소속 언론사 경영진이 -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 민감하게 받아들일 만한 문제를 취재할 때 취재 내용을 회사 간부에게 먼저 보고하는 경우는 없다. 간부가 그런 취재에 선뜻 OK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회사에 민감한 기사일수록 오히려 취재 사실을 최대한 보안에 부쳐야 한다. 언론사가 기자들에게 ‘앞으로 중요 인사를 취재할 때는 간부에게 먼저 보고하라’고 하면 그런 취재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이비 기자 없애려 취재 때 사전 보고 받는다면

사이비 언론사가 아니라면 기자들에게 ‘사전 보고’ 요구는 할 수 없다. 아니 사이비 언론사조차 이런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전 보고’는 취재에 어떤 도움도 안 될뿐더러 오히려 취재를 방해하는 요소다. 언론사의 수준이 어떠하든 반드시 기자는 있어야 하고 취재도 해야 한다. 정상적인 언론사라면 기자의 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일단 취재는 맘대로 하게 해놓고, 기사의 가치나 신뢰성 등을 판단해 보도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한 신문사가 소속 기자들을 너무 불신한 나머지 “너희들은 앞으론 취재할 때 회사 간부에게 보고하고 허락이 떨어지면 취재하라”고 지시하면서, ‘보고받는 특별 간부’까지 새로 설치하기로 했다면 이 신문사 사장의 뜻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장 측은 “사이비기자들의 못된 행태가 도를 넘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해명하고 있다. ‘보고받는 간부’는 공정하게 선발되기 때문에 ‘사이비성 취재’ 여부를 공정하게 판단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이 신문의 사전 보고제는 소속 기자들에 대한 경영진의 극단적인 불신과 혐오가 출발점이다. 신문의 품질이야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고, 오직 못된 기자들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낳고 있는 기괴한 풍경이다. 이 회사 대표는 오너가 아닌 5년 단임 임기제 월급쟁이 사장이어서 독자가 떨어지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 오직 눈엣가시 같은 기자들 손발을 묶어 경영진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취재를 사전 봉쇄하는 게 목표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포함한 각종 범죄 사실을 조사해 국민들에게 공표하고 있는 ‘검찰’은 언론으로 치면 이제 취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그동안 이 신문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해온 것은 사실이다. 기자의 권한을 남용해서 자신의 동료나 가까운 사람들은 봐주면서 미운털 박힌 대상에겐 적대적 취재와 보도를 일삼는 행태를 보여왔다. 살아있는 권력에겐 푸들이었다가 그 권력이 물러나는 즉시 맹견으로 둔갑하며 공격했다.

이런 행태를 그냥 놔둘 수 없다는 게 검찰개혁의 명분이고, 많은 국민들이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검찰개혁은 이런 ‘국민적 명분’보다는 현정권의 ‘정치적 이유’로 추진되고 있다. 현 권력도 언젠가는, 아니 이미 맹수처럼 달려드는 검찰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현 집권세력은 검찰과 여러 면에서 대척점에 있다는 점에서 특단의 자위적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게 공수처이며 사전 보고제다.

조국 장관 수사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의 격렬한 반응을 보면 공수처가 앞으로 어떤 조직이 될 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조국 사건이 공수처를 거쳐야 했다면 수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법원은 부부 구속은 피하려고 조 장관까지 구속하지는 않았으나 죄질이 좋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고 죄목이 10개를 넘었다. 그 정도는 검찰이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청와대의 생각인 듯한데 검찰이 그렇게 안 해주니까 청와대 뜻대로 할 수 있는 법과 기관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장삼이사의 국민들은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20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해도 그것 때문에 인권을 걱정하는 청와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권력 자신의 측근이 검찰에 소환통보를 받을 때만 대통령과 청와대가 총동원돼 인권을 외쳤다. 피의자 조국 장관 핸드폰은 검찰이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면서, 청와대에 무슨 일이 있으면 공무원들 핸드폰을 제것처럼 들여다 보는 정권이다. 국민 때문이 아니라 권력 스스로의 불편 때문에 만들고 있는 공수처가 분명하다.

유권무죄, 법으로 보장해주려는 공수처

공수처는 ‘유권무죄(有權無罪)’를 법으로 보장해주자는 기관에 다름 아니다. 이 정권은 공정과 정의를 독점한 듯 말하곤 하지만 조국 장관 사례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나 불공정한 정권인지 알 수 있다. 현 정권은 마침내 ‘유권무죄의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다. ‘유전무죄’엔 모두 분노하면서도 작금의 ‘유권무죄 입법화’엔 편이 다소 갈리는 것은 흥분하기 쉬운 대중의 약점을 이용한 ‘정치적 마술’에 불과하다. 그러나 마술은 마술일 뿐 진실이 될 수 없다.

검찰이 개혁의 대상인 건 분명하나 검찰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한 건 정치개혁이다. 개혁의 필요성이나 효과로 따지면 정치와 검찰은 비교 자체가 어렵다. 따지고 보면 검찰이 검찰권을 남용하다가 이런 위기에 처한 것도 썩어 문드러진 정치판이라는 활동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이 떳떳하면서 깨끗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쓰면 권력이 검찰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권력마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만 아끼고 등용하다가 종당에는 검찰의 밥이 되는 것 아닌가? 권력조차 나 살기 바쁜 마당에 어느 겨를에 국민의 인권을 챙길 수 있겠는가?

적폐청산을 외치던 청와대에서 부패 비리 사건이 잇따르고 있고, 고위직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면면들을 보면 권력이 좋아하는 인물일수록 도덕성이 국민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수두룩한 게 대한민국의 작금 정치 수준이다. 권력의 부도덕과 부패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정치권의 수준만 생각하면 검찰 인력을 더 늘려야 할 판인데 정부는 오히려 검찰의 수족을 자르려고 안달이다.

권력의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다니는 모습을 보고,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사죄는커녕 화를 내면서 공개적으로, 노골적으로 검찰을 겁박하는 모습은 문재인 정권 말고는 본 기억이 없다.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권이다. 공수처와 ‘검찰의 사전 보고’는 신군부정권 시절의 ‘보도 검열’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기자들은 편집안을 만들어 보안사에 가지고 가서 “이렇게 보도해도 되겠습니까?”하고 여쭌 뒤 허락이 떨어져야 신문을 찍을 수 있었다. 신군부 보안사와 현정권 공수처의 역할이 뭐가 얼마나 다른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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