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인간은 자기 안에서 경험을 통해서든, 배움을 통해서든 스스로 조금씩 진화한다. 진화한다는 것은 무조건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다. 퇴화되는 부분과 생성되는 부분이 함께 존재한다. 이처럼 우리는 완전히 좋거나 완전히 나쁘거나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상처 없이 성장할 수 없고,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상대방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을 왜일까? 그래서 ‘설마’가 사람을 잡나보다. 설마(서울馬-의 준말)에 탄 마귀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다. 설마가 넓은 영토에서 뛰어놀던 말(馬)이라 달리기 솜씨가 상당히 빨라서 마귀가 미쳐 날뛰는 거란다. ‘설마’하는 마음인가보다. 이정도로 마음을 다하면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한 치 앞을 못 보다’는 말이 있듯이 그 기대감은 사람을 더 절망을 빠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는 서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함께 했던 날들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버리는 것은 왜 일까? 그런 결과는 누구의 탓일까? 처음에는 내 탓인데, 이것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브레인(뇌) 탓이다. 뇌는 자신이 기억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반복된 일들이 벌어지면 해왔던 대로 진행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왜 이럴까? 왜 반복된 일들이 벌어질까? 에 대해서 찾아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유적 통찰을 통한 ‘자기 찾기’다.

생각을 곱씹고 곱씹다보면 ‘너 때문에 그랬어’,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 등 자신의 탓이 되지 못하면 결국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시점이 온다. ‘내 상처 때문에 내 스스로 발등을 찍는구나.’를 인정하는 순간이 온다. 그 때 비로소 자신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말이 어렵다면,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민들레 꽃씨는 민들레를 피우고 코스모스 꽃씨는 코스모스를 피운다. 즉 ‘콩 심는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원인에 따라서 결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씨를 뿌리는 주체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뿌린 씨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면 뇌의 시스템은 늘 해왔던 대로 작동한다. 자기를 찾아 자기답게 사는 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과 수고로움이 있을 때 비로소 새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는 것과 같다.

사랑에도 에너지가 있고, 분노에도 에너지가 있다. 결국 에너지가 없는 사람은 사랑도, 분노도 존재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참 좋다. 분노의 에너지를 충분히 사랑의 에너지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에너지가 존재하면 부정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관계 안에 있기를 원한다.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자신의 진자 두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심(心) 총 4획, 4획이니 마음을 동서남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마음의 방향을 잡지 못하면 줏대가 없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줏대가 없으면 마음의 방향도 못 잡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다. 지금 자신의 마음의 방향을 돌리는 열쇠(key)는 누구에게 있는가? 그 열쇠는 한 사람한테 하나씩 주어졌다. 주인은 ‘나’라는 것이다. 즉 나를 이끌어가는 마음이 주도적인 마음이다.

사랑의 대상을 멀리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랑하는 마음은 크게 다짐해야 되는 숙제가 아니다. 내가 Key를 돌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리 힘든 일이 아닐 수 있다. 내가 마음이 편해지고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라도 서로를 돕는 귀한 인연이 된다. 또한 내가 있는 이 곳에서 매순간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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