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는 8개 동에서 마을 의제 발굴이나 동자치 운영 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이른바 ‘자치지원관’을 만들어 시범 운영하고 있다. 내년엔 21개 동으로 확대할 계획인 가운데 대덕구는 12개 동 전부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연봉 3800만 원 정도 받는 자리인데도 채용의 기준과 과정에 논란이 있는 데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어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서울시가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한 뒤, 대전시 등 일부 지자체가 서울시를 따라하고 있다. 자치지원관제는 풀뿌리자치 활성화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은 마을자치 활성화를 위해 자치지원관이란 자리를 반드시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부터 의문이다. 이 제도는 자치지원관을 두지 않으면 주민끼리의 자치 활동은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말 그럴까?

이미 각 동에는 주민자치위원회가 구성돼 운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치활동을 하고 있는 구의원과 시의원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동네자치도 못할 이유가 없다. 마을 의제를 발굴하고 주민들 의견을 수렴해서 시정이나 구정에 반영하는 게 구의원이나 시의원 같은 지방의원의 본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파악된 동네 의견을 기준으로 시청이나 구청의 예산을 심사하고 견제하는 권한도 갖는다. 각 구에는 이미 자치지원관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걸 활성화는 데서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구청장은 지원관 둘지 동사업에 쓸지 동주민에게 물어보길

자치지원관이나 지방의원이 아니더라도 주민들 스스로 자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보긴 어렵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문가 도움 없이는 동네자치 활동조차 못할 만큼 수준 낮은 국민들이 아니다. 자치지원관의 도움을 받아야만 동네자치가 가능하다면 진정한 자치라고 보기도 어렵다. 반쪽짜리 자치에 불과할 뿐 아니라, 주민들을 자치 능력이 없는 바보로 아는 정책이다. 자치지원관제가 우리 국민의 민도를 너무 낮게 보는 게 아니라면 그 목적이 다른 데 있는 것이다.

자치지원관은, 역할이 기본적으로 동 단위 조직을 상대하는 일이어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적 중립 의무가 명확한 공무원 동장마저 중립성 시비를 빚곤 하는 게 동 조직이다. 자치지원관은 사실상 구청장이 별도로 임명하는 특수공무원인 셈이어서 그런 우려는 더 크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자치지원관이 구청장 친위조직화 될 우려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관변단체 인사가 선거 때면 여당을 돕곤 하던 관행과는 다를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동별로 자치지원관 한 명만 두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치지원관의 조보 인력 한 명(연봉 1600만원)까지 더하면 동마다 연간 5000~6000만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 돈을 자치지원관 두는 데 쓰지 말고 차라리 동네사업에 직접 보태면 자치 활성화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구청장은 자치지원관 인건비로 쓰는 게 좋을지 동사업에 직접 투입하는 게 좋을지 동주민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

동주민들 가운데는 자치지원관제의 실시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자치지원관에 쓰는 돈을 직접 주민들에게 달라는 반응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마을 의제 찾는 법을 모르고 회의 운영할 줄 몰라 동네자치 못하겠다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별도의 인력이 반드시 더 들어가야 한다면 기존 동사무소 인력을 쓸 수 있다. 서구청의 경우 공무원 인력 활용을 검토 중이라고 하는 걸 보면 별도의 자치지원관을 두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시민 세금 가지고 현직 단체장 선거조직 만든다는 의혹을 사는 자치지원관제는 중단해야 한다. 주민을 바보로 아는 정책일 뿐 아니라 정치적 편향성이 우려가 큰 사업에 국민 세금을 쓸 이유가 없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