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김용옥 교수의 발언을 보면 좌파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말은 0.0001%도 못 믿겠다거나 이승만 묘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은 진보진영 입장을 대변한다. 요즘엔 ‘통일, 청춘을 말하다’를 주제로 진보 인사 유시민 씨와 나눈 대화를 책으로 내, 대통령이 읽고 일독을 권하기도 했다. 김 교수의 말은 진보언론에선 반기고 보수언론에선 비판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일부 언론에조차 그를 ‘진보지성’이나 ‘막장좌파’로 칭한다. 그러나 그는 본래 좌파가 아니라 우파다. 김 교수가 고려대 교수 시절 쓴 책 <여자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민중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민중운동하는 분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민중이라는 이름을 팔아먹고 살지는 않는다. 나는 민중이 아니다. 나는 지식인이요, 엘리트다. 민중운동가들이 나를 반동분자로 본다면 얼마든지 반동분자로 몰아도 좋다.”

“나는 마르크스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마르크스 형님을 우습게 볼 수 있는 나 자신의 세계가 있는 사람이다. 마르크스 형님의 기발함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분석에 있지 그의 혁명이론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에게는 혁명이론이 없으며, 그는 철저히 반혁명 사상가라고 나는 본다. 이 말을 듣는 마르크스 형님의 전문가들은 나를 때려잡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디펜드할 자신이 있다.” 

“안티테제의 매너리즘에 빠질 수는 없지 않나?”

“때려 엎읍시다!”고 외치는 (운동권) 학생들에게 김 교수는 이렇게 답했었다. “하루아침에 때려 엎을 수는 없는 우리 현실이 있다면 그 현실에 대해 보다 정확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중략- 안티테제(반대 주장) 그 자체의 매너리즘에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불란서 혁명이 성취하고자 했던 이상이 과연 길로틴의 피 속에서 일시에 다 해결되었는가?” 

‘여성 해방’에 대한 특강을 해달라는 제자에게도 처음엔 손사래를 쳤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분명 너희들이 원하는 그러한 말이 아닐 텐데..”라고 거절부터 했다. 나중 페미니즘을 노자로 풀어낼 수 있는 철학적 주제가 된다고 보고 특강도 하고 책까지 냈으나 여성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고민은 별로 없던 교수였다. 그는 민중운동도 여성운동도 마르크스도 부인하던 우파 학자였다.

그런 그가 지금 우파가 아닌 좌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가치관이 바뀐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버드대 박사과정까지 거친 철학자의 생각이었던 만큼 시간이 흘러도 기본적인 가치관이 180도 변하기는 어렵다. 진보주의자도 보수적 관점을 취하는 부분이 있고, 보수주의자도 진보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으로 봐야 할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도 여전히 보수적이다. 남북문제 등 부분적으로만 ‘과격한 좌파’다. 언뜻 보면 진보지만 주장의 바탕에 진보 색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유시민 씨와의 대화에는 “김정은을 사랑한다. 김정은은 너무 순진해서 문재인 같은 사람 항상 있을 줄 안다. 두 번 다시 문재인 같은 사람 못 만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말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문 대통령이 듣기 좋은 립서비스다. 이 책에서 김 교수의 학문적 주장을 찾자면 ‘이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사상이나 체제 등을 고집하지 말고 남북이 각자의 현실에서 서로 왕래하는 노력을 해보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하고싶어 하는 말일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학문적 소신과 양심 감추는 건 곡학아세

보수 학자와 진보 대통령이 죽이 잘 맞는 건 어찌 보면 보기 좋은 모습이다. 자파끼리만 밀어주고 끌어줘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파 학자가 늘 좌파 권력과는 가까이 지내면서 우파와는 견원지간처럼 지낸다면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이다. 김용옥 교수의 ‘진보적 언사’가 주목을 받을 때마다 그게 의아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 등 그럴 만한 일들이 있긴 했으나 순전히 그런 이유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지식인이 권력의 품에서 놀면서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굽히는 건 지식인의 역할을 포기하는 행위다. 지식인이라면 학자적 소신이나 도덕적 기준이 있게 마련이다. 국가 정책이나 권력의 도덕성 문제가 있을 때 소신과 양심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의 품 안에 들어 가 있는 지식인은 그게 어렵다. 보수 정권의 최순실 사건에는 거품을 물면서도 진보 정권의 조국 사건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구미에도 맞지 않는 말로 권력을 칭송해야 한다. 

지식인과 정치인의 차이는 정치인은 집권을 위해 때론 소신을 굽힐 수도 있으나, 지식인에게는 학문적 소신과 양심이 재산의 전부라는 점이다. 학자가 학문적 소신을 굽히고 감추는 것은 바로 곡학아세로 가는 길이다. 지식인이 권력과 친하게 지내려고 소신을 감추고 굽히는 것은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특히 자신과 성향도 다른 권력과 친밀관계를 유지하려 소신을 굽히는 것은 적어도 지식인이 할 일은 아니다.

지식인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떨 때 대통령보다 위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지식인이다. 좌파든 우파든 지식인의 학문적 소신과 양심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향력이 큰 지식인일수록 그 역할은 더 막중하다. 영향력 면에서 김용옥 교수는 손꼽히는 학자가 분명하나 지식인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고금을 통해 보면 시대가 알아주는 천재(天才)도 권력 앞에서는 무기력한 경우가 많다.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은 천재성과는 관계가 없는 편이다.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른 것을 바르다고 하며 아부한다. 지식인은 대중(여론)에도 취약하다. 자신이 응원하는 권력과 대중이 한 편일 때는 더욱 그렇다. 모두가 동쪽이라고 할 때도 소신을 갖고 서쪽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지식인이다. 권력이 좋아하고 대중이 박수칠 일까지 지식인이 나설 이유는 없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에만 열중하는 지식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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